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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연금 수령한다고 폄하하듯 바라보지 마라.

2011/09/07 00:57

최근들어 부쩍 은퇴관련 보도 기사가 늘어나고 있고, 추세를 예상한다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유사한 내용이 충격적인 내용을 포함에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예상을 자신있게 하는 것은 '인구 지도'에 근거한다. 베이비 붐 세대의 퇴직으로 인해서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변화에 있어서 변동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담스러운 기사거리는 '은퇴 준비' 하지 않은 빈곤 은퇴 층에 관한 기사들이다. 은퇴라고 하는 것은 더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은퇴 기간이 30년은 족히 될 것이라는 부분이 미래에 대한 직접적인 불안감을 확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한 연구소의 조사 보고 자료는 은퇴 이후에 최소생활비조차 조달되지 않는 은퇴 가구가 전체 고령 은퇴가구의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어쩌면 공포심과 불안감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40%에 해당하는 은퇴빈곤가구는 앞으로 공적 부조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전체 은퇴 빈곤가구의 51%정도는 실제로 주택을 소유하고도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택을 소유하고도 은퇴빈곤가구로 분류되는 이 분들은 질병 등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해서 집을 팔거나 보증금을 빼 쓸 수 경우 생활이 막막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무엇보다도 조기 연금 수령을 하는 이유는 바로 생활비가 없어서이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조기 연금을 수령하는 은퇴자는 약 10만1100명이었는데, 올해 23만 4천 명으로 최근 5년 사이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생활비를 해결하려고 연금 받는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조기 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정상 연금의 30%까지 줄여서 미리 받으려는 속사정은 무엇인가? 생활비가 없어서이다.

당장은 현금이 들어오지만 한 해 일찍 받을수록 정상 연금의 6%씩 깍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오래 살수록 정상으로 연금을 타는 것도 유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연금 가입동안 신체적 장애가 생기면 장애연금을 탈 수 있지만, 조기연금 수령자는 장애연금을 탈 자격이 상실된다. 이것 이외에도 유족 연금도 정상 연금보다 지급 비율도 떨어지는 불리함이 작용하게 된다.

국민연금 창구직원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조기 연금을 수령하겠다는 것은 생활에 필요한 현금이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인출 가능한 연금에 손을 대는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정년 연장은 아직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55세가 보편적이다. 지난 6월에 있던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년 연장 합의에 실패했다. 당시 의제는 정년 나이 60세가 목표였다. 아무튼 정년 연장에 대한 법제화는 실패했더라도 노사정은 중고령 인력의 점진적 고용 연장을 위해 노력한다는 선언적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스스로 고용연장에 나설 기업은 법제화되었을 때 보다는 소극적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다른 은퇴 선배국들은 어떻게 대비하였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원을 거니는 시니어, 그들은 퇴직와 동시에 연금을 받는다.]

일본은 은퇴와 동시에 연금을 개시한다. 2013년부터 65세 정년을 추진하고 있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도 은퇴에 맞추어 지급이 시작된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연금수급 연령을 밑도는 정년 설정을 금지하는 법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정년은 60세이고 2018년에는 62세로 연장된다. 물론 연금 지급시기도 정년 퇴직하게 되면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한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06년부저 연령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위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65세 이상은 제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정년이 65세라는 것을 의미하고 연급시기 역시 65세로 정년이후 바로 수령하게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정년도 늦거니와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수령하도록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연금제도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상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정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현행 제도가 퇴직과 동시에 연금 수령을 못하도록 되어 있고, 생활비가 부족하다보니, 조기 연금을 신청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퇴직 후에 당연히 일자리가 없으면 소득이 없는 것이고, 연금이 소득을 대체해야 하는데 5~6년 연금 수령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동안 기다릴만한 현금유입이 없으니 조기 연금수령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퇴직과 동시에 연금지급이 개시되면,  조기연금 수령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이고, 마치 준비도 안한 것처럼 질타하는 듯한 기사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뚜렷한 일자리 대책같은 생활비 조달 기회를 만들어주지는 못하면서 국민연금 공단의 발표 자료에 모든 언론들이 '위기'를 언급하고 나서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에 대응책이 만들어질 수 없는 만큼, 마치 준비없이 무책임하게 은퇴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치는 것은 두 번 상처를 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 그들의 고충을 이해한다면 대응책을 함께 제시하는 지혜가 먼저 필요하다. ⓒ 김형래

본 칼럼은 '조선일보의 인터넷판'에 동시에 실린 글입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7/20110907020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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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향수보다 마음의 향기가 오래간다.

2010/04/14 23:30
The_Road_To_Europe_2008-02-08_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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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여행, 프랑스,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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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선천적인 면도 있지만, 훈련과 노력으로 길러진다.

2009/09/08 23:27
Paris, France
[사진설명 : 루브르 박물관의 '승리의 여신 '나이키'" 상,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던 조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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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파트너즈, 치매예방 프로그램 '해피뉴런' 서비스 개시

2009/04/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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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사업 컨설팅업체 시니어파트너즈는 22일 자사 시니어 포털사이트 유어스테이지닷컴(www.yourstage.com)을 통해 프랑스 SBT사가 개발한 시니어 맞춤형 두뇌 트레이닝 프로그램 '해피뉴런'을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해피뉴런은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 시공간감 등을 훈련시키는 두뇌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체계적인 인지과학에 바탕을 둬 단순 반복 게임에 비해 효과가 크다. 실제로 컴퓨터 인지공학 전문가 및 신경과학자가 개발에 참여했으며, 일본과 유럽에서 각각 일일 방문자 수 30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용자는 간단하게 게임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에서 뇌의 각 부분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사용할 수 있다. 난이도에 따른 개인별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적 분석에 따른 사용자 두뇌 분석 도표와 그래프도 보여준다.  기억력 훈련 8가지, 집중력 훈련 7가지, 판단력 훈련 4가지, 시공간감 훈련 5가지 등 총 24개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월 9천원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시니어파트너즈 박은경 대표는 "해피뉴런은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두뇌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라며 "시니어들이 매일 즐겁게 게임을 하다 보면 뇌를 효과적으로 단련하고 젊어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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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23) 루브르 박물관, 딱 두 시간 동안 관람하기

2008/11/17 00:10
 일곱 번째날 아침, 에펠탑에 선착순으로 달려간 셈이다.

호텔에서 짐을 다 빼고는 공항으로 떠날 채비까지 마친 아침, 야경으로 보았던 에펠에 오르기 위해 에펠탑 밑에서 줄을 섰다. 여행객들에게 예외 없이 줄을 세우는 대표 관광지 에펠탑. 1시간 정도의 줄이면 그나마 양호했다고들 하는데, 그 한국인들의 부지런함은 에펠탑에서도 발휘되어 줄 서기 시간이 10분으로 단축되었다.

에펠탑에 오르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두 번 검사 받는다.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탄다는 얘기인데, 처음 입장할 때 한 귀퉁이를 잘라내고 갈아탈 때 한 귀퉁이를 잘라내면. 입장권은 뾰족한 탑 모양을 이룬다. 이 모양이 또한 에펠탑의 여행 묘미.

처음부터 친절하게 대신 귀퉁이를 모두 잘라낸 여행객들이 종종 있나 보다. 그럴 때 다시 처음 줄 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그야말로 지역규칙인 '에펠탑의 입장법칙'


오르는 것만도 장관인데, 막상 오르고 나니 눈에 걸리는 것이 없어 허전하기까지

유난히 파리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다. 우리나라 서울의 위도는 37°34′, 파리의 위도는 48°58. 지리적으로 파리가 훨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 그림자가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 선글라스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오에 햇빛이 머리를 지나기보다는 눈앞을 지난다고 생각하면 그 눈을 향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선글라스가 필수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적인 장소에 가면 생리현상이 발동하는 것이 내 습성이다. 화장실에 변기에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달걀모양의 군더더기 없는 소변기가 아주 인상적이지 않는가?

파리는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약 2만 2천500리 떨어져 있다.

서울까지 8,991km 직선거리를 알리고 있다. 동화책 '엄마 찾아 삼만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실감이 가는 대목이다. 파리는 날씨 때문에 더욱더 낭만적이라는 얘기를 한단다. 일 년 해 밝은 날이 100일이 될까 말까 한단다. 그러니 버버리 코트가 런던이건 파리이건 유행할 수 밖에 없고... 아무튼 내가 갔던 날은 멀리 '몽마르트르(Montmartre: 순교자의 언덕. 해발 130m)'언덕에 있는 '사크르퀘르 사원 (Basilique du Sacre-Coeur)'까지 200mm 렌즈에 커다랗게 잡히는 참으로 좋은 날씨를 보였다.

아래로 서울의 여의도 같은 격인 센강 한복판에 있는 '시테 섬(le de la Cité. 파리의 발현지)' 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http://www.notredamedeparis.fr)까지 충분히 시야에 들어왔다.

융프라우에서도 파리에서도 날씨만큼은 그야말로 천금처럼 행운으로 이끌어 주었다.


에펠을 나와서 곧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큰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두 시간이면 됩니다."

파리의 한복판에 문화대국 프랑스의 자존심 '루브르 박물관 (Musee du Louvre)'을 불과 두 시간에 다 본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말인가? 한 파리에서 자칭 예술가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분의 말인즉슨, 두 시간이면 인간이 맑은 판단과 지각으로 예술품을 볼 수 있는 한계 시간이라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과학적 근거를 통해서, 시간 바쁜 여행객의 불안한 시간 조급증에 이해를 더해 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다고 한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의 건축 기본 목적이 이렇게 전쟁처럼 살벌했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완공된 시기는 지난 13세기. 이후 왕궁으로도 쓰였다고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나폴레옹이 원정국에서 약탈한 예술품들로 채워감과 동시에 대대적인 매입을 병행해, 예술품이 가득가득 차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제대로 관람하려면 일주일이건 일년이건 기한이 없다는 루브르. 그저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발길을 촘촘히 쉬지 않고 움직이며 시선은 원근의 조절 속도를 높이고 카메라 셔터에 올려진 검지 손은 좀처럼 껌을 붙여 놓은 듯 차마 뗄 수 없이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나오는 곳을 몰라서 줄을 잃으면 곤란한 곳. 거기에 '드농(Denon)','리슐리(Richelieu)' 그리고 '슐리(Sully)'로 나뉘어 방문객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곳. 또한, 완벽하게 이 박물관을 안내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등등의 불편함은 있지만,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 그림과 조각품과 유물을 볼 수 있다는 설렘이 관람을 마치는 동안까지 가득했다. 물론 이곳도 긴말로 설명하면 할수록 체면이 깎이는 곳이라서 가능한 많은 사진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루브르는 문화재 약탈의 현장. 프랑스는 약탈물로 관광산업을 하는 셈이고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한 곳에 모아놓으려는 나폴레옹의 뜻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문서를 약탈당했던 역사가 있다.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당시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의 일환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법을 어긴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 9명을 처형하였다. 프랑스는 즉시 극동함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공격하였으며 그것이 1866년의 병인양요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를 침범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왕실보유의 은덩이를 약탈하였으며, 당시 왕립도서관이던 외규장각을 불태워 4,700여 권의 도서를 없앴으며, 나머지 300여권의 외규장각도서를 약탈해갔다. 이러한 약탈과 방화는 당시 프랑스 침입군의 수장이던 로즈 제독이 프랑스 해군성 장관에 보낸 문서에 의해 명백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1992년부터 프랑스정부에 대한 도서반환요구가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의 고속전철사업 참여에 혈안이 된 프랑스는 자국회사인 TGV가 타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영구임대방식의 도서반환을 약속하였다.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은 도서 2권을 가져와서 그중 1권만을 한국에 두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2000년 10월 19일 김대중-시라크 양국대통령은 한불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우리 문화재와 맞교환(등가 교류 대여)하는 방식으로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참고로 영구 임대는 외규장각 도서의 소유권은 프랑스가 갖는 대신에 우리나라에 영원히 빌려주는 방식이고, 등가교류 대여는 외규장각 도서와 비슷한 가치를 지닌 국내 문화재와 맞교환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쉽게 돌아올 수 있는 문화재는 단연코 "없다." 그렇다고 결코 포기 못할 일! 

이탈리아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상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Vénus de Milo)'는 그리스에서 약탈한 것이다. 거기에 '니케(Nike) 상'도 그리스'에서 약탈한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적이 약탈당하여 한곳에 모여져 있다. 루브르는 약탈의 본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영국이 대영박물관이 예외가 아닐 것이 분명하게 예상된다.

이곳을 관람하고 나오는 심경이 한 편으로는 거장들의 예술혼에 감명을 받았다면, 도둑이 훔쳐온 물건들을 돈 주고 본 기분에 씁쓸한 입맛을 지울 수 없었다.

쓴 입맛을 달래려 일곱 번째 날 여행 '달팽이 요리' 점심으로 다음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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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목록

7박8일 유럽여행 - (25) 묵었던 5개 호텔 돌아보고, 여행 마무리
7박8일 유럽여행 - (24) '에스까르고' 먹고 '파리' 떠나기
7박8일 유럽여행 - (23) 루브르 박물관, 딱 두 시간 동안 관람하기
7박8일 유럽여행 - (22) 프랑스 남자에게 동양 여자는 행운이라는
7박8일 유럽여행 - (21) 14Cm 빨간굽의 구두를 신었던 루이14세
7박8일 유럽여행 - (20) 파리는 '빛의 도시'인가 '꽃의 도시'인가?
7박8일 유럽여행 - (19) 괴테가 극찬한 '아름다운' 베른을 거쳐서 파리로
7박8일 유럽여행 - (18) 스위스 민속공연은 시니어들의 독점부업
7박8일 유럽여행 - (17) 3,454m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다.
7박8일 유럽여행 - (16) 융프라우 출발점인 인터라켄은 밝고 깔끔했다.
7박8일 유럽여행 - (15) 역사여행지를 넘어 자연여행지 스위스로 가다.
7박8일 유럽여행 - (14) 450년을 지었다는 대성당을 보고 감격하다.
7박8일 유럽여행 - (13) '카사노바'의 가면과 모자는 지금도 인기절정
7박8일 유럽여행 - (12) 바다와 결혼한 베네찌아, 물과 연애하는 곤돌라
7박8일 유럽여행 - (11) 베네찌아의 유일한 광장 '싼 마르꼬 광장'
7박8일 유럽여행 - (10) 곤돌라와 바포레또 사진을 원없이 찍어대다.
7박8일 유럽여행 - (9) 카사노바의 활동지였던 베네찌아를향해서
7박8일 유럽여행 - (8) 피렌체, 황혼 여행지로도 꼭 선택해야 하는 곳
7박8일 유럽여행 - (7) 돌덩이 하나에 역사를 기록한 '사비니 여인 약탈'
7박8일 유럽여행 - (6) 단테의 첫사랑을 찾아 피렌체를 헤매다.
7박8일 유럽여행 - (5) 오드리 헵번을 스페인광장에서 만나다.
7박8일 유럽여행 - (4) 까따꼼베에서 빤떼온을 향해
7박8일 유럽여행 - (3) 바띠깐 박물관에서 싼 삐에뜨로 광장까지
7박8일 유럽여행 - (2) 바띠깐 시국(市國)을 시작으로
7박8일 유럽여행 -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7박8일 유럽여행 - (0) 해외여행이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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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21) 14Cm 빨간 굽의 구두를 신었던 루이 14세

2008/11/03 06:51
 '파리' 여행은 7박8일 유럽여행 중 6~7일째의 여정으로 마지막 여행지였다. 엿새째 날 점심을 '수라(SOURA).'라는 자랑스러운 한식당에서 마치고 샹젤리제와 개선문,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여행을 계속했다.

파리의 낭만이 시작되는 곳을 '샹젤리제 거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세계 패션과 유행을 대표하는 '샹젤리제 거리 (Avenue Champ Elysees)'의 이름은 들판을 뜻하는 '샹(Champs)'과 낙원을 의미하는 'Elysee'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러니 '샹젤리제'의 거리는 '낙원의 들판'이라고 해석이 된다. 16세기까지는 늪지대였으나 16세기 때 조경의 달인인 '르 노트르(Le Notre)'의 손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로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이 거리는 전 세계인들에게 그 화려함을 빼놓지 않고 뽐내고 있다.

길이가 5리도 안 되는 약 1.8Km의 길이 곧바로 개선문을 향해 뻗어 있는, 개선문이 있는 에뜨왈 광장에서 꽁꼬르드 광장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유명한 거리인 셈이다.

나폴레옹이 지시하고 본인의 주검이 통과한 '개선문'은 '에뜨왈 광장'에 있다.

파리의 에뜨왈 광장은 전형적인 방사형 모양을 하고 있다. 12개의 대로가 에뜨왈 광장으로부터 각기의 방향으로 똑바로 갈라져 나오게 된다. 적이 침공했을 때 가장 적은 전력으로 12개 방향에서 진격하는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

이 에뜨왈 광장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개선문(Arc de Triomphe)'이다. 600여 명의 장군의 이름과 나폴레옹의 승전 부조가 예술적인 모습의 묘한 조하가 가슴으로 더 깊이 자유와 인권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파리 사람들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키가 작다는 특징 때문이라고 전편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키 작은 프랑스 사람들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장군이자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단신이었고, 베르사유 궁전의 주인이었던 '태양 왕 루이 14세' 역시 단신으로 유명하다.

일화로만 여겨졌던 루이 14세가 정말로 14Cm 높이의 빨간 굽을 신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으로 발길을 옮겼다.

'베르사유 궁전'은 역사적 교훈을 남겨준 여러 왕권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절대 부패는 절대 몰락이라는 아주 참혹한 현실과 함께 민주주의의 첫 걸음이 된 '프랑스 대혁명'의 교훈을 남겨준 곳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사람들은 통제를 극히 싫어하고 국민 자신을 자주권을 가진 독립체로서의 존중됨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을 거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흡연의 경우에도 세계 각국에서 실내 금연으로 금연인구를 밖으로 내몰고, 길거리 흡연도 금지해 오갈 곳이 없게 하는 것이 대세이지만, 프랑스는 실내 흡연을 마지막으로 금지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길을 건널 때나,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는 것이나 가장 풀어지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이곳저곳에 묻어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셈이다.

베르사유 궁전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라고 생각되어, 열심히 찍은 사진으로 대처하려 한다. 그중에서 17개의 대형 거울과 17개의 창문 길이 73m 폭 10m 높이 12.3m의 '거울의 방 (Galerie des Glaces)'과 왕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비가 출산했다는 '왕비의 침실(La chambre de la reine)' 그리고 '정원 (Les Jardins)'을 꼭 기억에 담고 싶었다.

파리에 도착하니, 나의 글도 그저 카메라 앵글도 못 따라가는 듯, 힘을 잃고 있다.

사진으로도 글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곳이 파리이다. 다음 편에는 엿샛날 밤과 일곱 번째 날 아침의 에펠탑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고, 마지막 여행코스인 루브르 박물관을 거쳐 공항으로 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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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목록

7박8일 유럽여행 - (25) 묵었던 5개 호텔 돌아보고, 여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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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5) 오드리 헵번을 스페인광장에서 만나다.
7박8일 유럽여행 - (4) 까따꼼베에서 빤떼온을 향해
7박8일 유럽여행 - (3) 바띠깐 박물관에서 싼 삐에뜨로 광장까지
7박8일 유럽여행 - (2) 바띠깐 시국(市國)을 시작으로
7박8일 유럽여행 -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7박8일 유럽여행 - (0) 해외여행이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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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20) 파리는 '빛의 도시'인가 '꽃의 도시'인가?

2008/10/28 06:10
 '파리'는 발을 딛자마자, 나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렸다.

테제베가 파리의 동부에 있는 갸르 디 리용(GARE DE RYON)역에 도착한 시간은 여행 엿샛날 오후 1시. 열차는 정말로 절대갈 수 없게, 앞머리가 딱 마지막 개찰구 코앞에 멈추어선 것이다. 그제야 KTX가 왜 앞뒤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벌써 역대합실 천정의 철골부터 조각을 달고 있었고, 물받이 통에 사자 목이 걸려 있었다. 역을 빠져나와 힐끔 뒤로 돌아 역사 외관을 둘러보았을 때 역시, 그야말로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들이 틈새 틈새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중에 젊은 아가씨의 누드상도 창밖을 장식하고 있었다. 거의 19금 자태로
. 눈을 돌릴 수 없도록 매력에 그 누구라도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명사에 확신적 긍정의 마침표를 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파리'를 여행하기 전 기초 정보를 파악하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예의

센 강 중류에 있으며, 면적은 105㎢ (서울의 1/6). 인구는 250만 명(서울의 1/4, 주프랑스 대사관 배포자료)이다. 물론 위성도시 인구를 포함하면 1천1백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런데 그 누구도 파리를 낮은 수준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도시는 해마다 1천만 명의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파리를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고,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파리를 '빛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행객인 나에겐 파리는 "꽃의 도시"였다.

파리의 역사는 2천 년을 넘긴다. BC 300년경 켈트족의 파리지(Parisii)라는 부족이 센강의 섬들에 정착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AD 52년 로마의 갈리아 지방 정복과 함께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면서, 로마 지배 이후 파리는 급격히 팽창, 발전하게 된다. 중세 메로빙 왕조와 카롤링 왕조를 거치면서 주요도시로 성장하고, 10세기 말 위그 카페(Hugues Capet) 왕조의 등장과 함께 파리는 수도로서의 확고한 지위 구축된다. 13세기경 시테 섬을 중심으로 상업지구 및 대학지구 형성, 발전하고, 19세기 중반 오스만(Haussmann)의 파리 개조계획 시행 및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근대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파리의 시가지는 150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름없는 모습!

파리는 센강을 기준으로 우안(rive droite)과 좌안(rive gauche)으로 나뉜다. 우안은 전통적으로 정치, 경제 기능이 집중된 곳으로 정부 기관, 사무실, 백화점, 주요 기차역 등이 집중해 있다. 반면 좌안은 교육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좌안의 라틴 지구에는 소르본을 비롯한 대학 및 연구소 등이 집중해있다. 우리나라가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나뉜 것과 같이 강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중요한 구분 점으로 활용되는 특징이 이곳 파리에도 존재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여 몹시 좁은 편에 속하지만 둘레 36km의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에 둘러싸인 부분이 1860년 이래의 파리 시가지이다.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에의 집중현상’은 프랑스의 특징이며, 파리는 세계 제4위의 인구밀집 지역이라고 한다.


까다로운 파리지엔의 입맛을 감동시킨 '수라(Soura)' 한식집엔 꼭 들러보세요.

파리도착 첫날 처음 방문한 곳은 '수라'라는 상호의 한정식집이었다. 예전에 신문기사를 통해서 파리인 입맛 사로잡은 한식밥상 '수라'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파리 사람들을 사로잡은 한식 밥상이 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물론 세계적인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에 왔으니 그중에서 에스까르고(Escargo, 달팽이 요리) 식사는 예정이 되어 있지만, 파리시내 14구에 자리한 ‘수라(SOURA)’(대표 이영미)는 그야말로 놀람 그 자체였다. 

현지식만을 고집하며 던 나는 '수라'에 들어서면서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것에 놀랐다. 스물다섯 평이라는 작은 식당엔 54개 좌석이 전부지만, 파리를 찾은 아니면 파리에 있는 이들에게 경쟁력 있는 한식을 먹는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우쭐해졌다. 물론 음식 맛이 얼마나 좋은지 현지인들에게 한식 밥상의 맛과 멋을 알리는 우리 맛의 전진기지인 셈이다. 단체 여행객들에게 그저 그렇게 몰고 가는 한식당 중에 하나가 아님이 분명했다. 어김없이 여행객인 우리 식탁은 가장 빈약했음에도 말이다.

파리는 이렇게 내 발목을 또 잡는다. 이번 주에는 고작 파리에 도착해서 점심까지 밖에 기록을 못 하게 되었으니, 상젤리제를 지나 에뜨와 개선문, 그리고 개선문에서 베르사이유 궁전 그리고 센강의 유람선이 여섯째 날의 일정인데. 여기서 다음 주를 기약한다. 이런 식으로 파리가 이렇게 내 발목을 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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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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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

2008/04/30 23:10
 영국이 ‘음식’을 ‘자원’으로 파악하고 식량을 지배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지배하였다면 프랑스는 음식을 ‘문화’로 파악하여 식문화로 패권을 추구하고자 한 나라이다.  2005년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영국인을 빗대어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사실 그러한 사고방식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전통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요리 이외의 독일 요리, 영국 요리 등은 상류사회 요리가 아닌 농민 요리로 치부한다.  “독일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영국 요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주장이다.  자신들이 세계 음식문화의 중심이라는 프랑스인의 강렬한 자의식, ‘식(食)의 중화사상’에는 때로 소름끼치지만, 그만큼 자기네 음식에 대한 열정이 특별한 것만은 사실이다.

와인으로 상대의 격을 매기는 프랑스 외교 :

파리의 엘리제궁에서는 요리와 와인을 무기로 전략적인 외교를 펼친다. 흥미로운 것은, 내놓는 메뉴와 와인을 통해 프랑스 정부가 상대의 문화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이나 와인에 대한 지식은 몇 세기 전부터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이 갖춰야 할 교양의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인이 특히 더하기는 하지만, 음식에 대한 화제는 유럽인들에게 기본적 교양인 것이다. 따라서 외교에서도 식문화의 수준은 중요하다. ‘외무성이 기밀비로 고가의 와인을 사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지적을 종종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메디치가와의 결혼이 프랑스 요리의 시작 

15세기 백년전쟁부터 부르봉 왕조 탄생에 이르기까지 절대왕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로부터 우수한 식문화가 건너온다. 프랑스 요리에 관한 한 역사책을 찾아보면 “1533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앙리 2세와 결혼하여 피렌체의 요리사를 동반하고 프랑스에 도착한 시점을 근대요리의 기원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프랑스에서 나이프, 포크를 사용하여 음식을 먹게 된 것은 메디치가의 아가씨가 시집오고 나서부터이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개별 접시에 음식을 먹는 스타일도 메디치가로부터 들어왔다. 카트린이 데려온 요리사들은 수프와 베사멜 등의 소스류, 트뤼프, 그린피스, 아티초크, 브로콜리 등의 요리법을 전해주었고, 잼과 케이크, 마카롱, 프랑부아즈, 프티푸르 등의 설탕과자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도 프랑스 왕궁에 들여왔다. 또 와인 마시는 법도 프랑스 왕실은 카트린의 매너를 채용하였다.

왕궁에서 시민사회로 :

부르봉 왕조는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 이로 인해 국고가 바닥나고 급기야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왕족과 귀족들의 요리를 담당하던 요리사들은 고용주를 잃고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한다. 궁정의 문화가 시민사회로 나오게 된 것이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미식의 도시가 되었고 1803년에는 유럽 최초로 미식 정보지 『미식가의 연감(Almanach des Gourmands)』이 발행되었다.

빈 회의에서 요리를 외교의 수단으로 :

부르봉 왕조 이래 프랑스에서는 요리가 권력의 과시와 외교의 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왕정복고 시대까지 외교관을 지낸 탈레랑은 요리를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다. 프랑스는 당시에도 이미 요리를 외교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당시 프랑스 요리의 수준은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1814년부터 15년에 걸쳐 열린 빈 회의에서 프랑스의 외무대신이었던 탈레랑은 마리 앙투안 카렘이라는 요리사를 데려가 교섭 상대에게 음식 공세를 퍼붓는다. 현대 프랑스 요리가 확립된 것은 빈 회의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일. 19세기에는 로트렉, 알렉상드르 뒤마,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미식가로도 유명한 저명한 예술가들이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보르도 와인의 등급이 매겨진 것도 19세기의 일. 당시 나폴레옹 3세는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보르도 와인에 등급을 매길 것을 명령하였고, 수많은 샤토 중에서 88개소가 선정되어 1급에서 5급까지 등급이 매겨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요리는 문화다 :

유럽이 세계를 석권하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된 이 200년 동안은 프랑스 요리가 발흥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국제 정치의 패권은 유럽과 미국에 있었지만 식문화로서 전 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요리였다. 프랑스 요리는 한마디로 말하면 ‘음식의 문화’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가 영국, 미국과 다른 점이다. 음식을 단순히 영양을 취하거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 파악하는 것이고, 또한 와인과 요리와의 복잡한 조합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그것이 때로는 외교상의 미묘한 밀고 당김에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이다.

  식탁 밑의 경제학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지음, 유주현 옮김
세계적 경제분석가인 저자는 책에서 바로 이런 '식(食)'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흐름과 역사를 살핀 살피고 있다. 경제와 역사를 읽는 데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그런데 왜 저자는 하필 음식을 통해 경제와 역사를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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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9일 프랑스 ‘엘르’ 전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 사망

2008/03/09 23:17
2008년 3월 9일은 프랑스 ‘엘르’ 전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가 사망한 지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장 도미니크 보비.

프랑스 여성잡지 ‘엘르’ 전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가 심장마비로 1997년 3월 9일,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이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생애 마지막 기간에 왼쪽 눈꺼풀의 움직임만으로 ‘다이빙복과 나비’라는 제목의 130쪽 짜리 책을 펴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엘르’의 편집장으로 있던 1995년 12월 그는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 측은 그의 뇌와 신체를 잇는 신경망이 끊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때부터 보비는 말을 할 수도, 무엇을 먹을 수도, 심지어 혼자 힘으로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뇌 이외에 살아있는 신경망은 오직 한군데,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이 때 전에 그의 편지를 받아보았던 출판사 사장 안토닌 오두아르씨 등 친구들이 그에게 눈을 깜빡임으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본떠 책을 써볼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그만을 위한 의사소통 방법이 고안됐다. 프랑스어의 각 알파벳을, 눈 깜빡거리는 횟수로 표시하기로 했다. e나 s 같은 자주 사용하는 문자는 가능하면 눈을 적게 깜빡거리도록 순서를 재배열했다. 마침표는 ‘눈을 아예 감아버리는 것’으로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써나간 글은 하루에 책 반쪽 정도.

1년3개월 동안 20만번 이상 눈을 깜박거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인간승리인 동시에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젊은 지식인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에 최대한의 존경과 애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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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파리에 못지 않은 훌륭한 도시이다.

2004/09/12 23:05
파리에서 살고 싶은 이유

낯선 도시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 게 내 꿈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라도
나는 실제 있는 그대로 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싶다.
예를 들어서 실제로 어떤 나라를 가보아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모르는 척하고 싶다.
내게는 익숙한 어떤 사상을 누가 장황하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듣는 것처럼 하고 싶다.
누가 나의 사회적 지위를 묻는다면 나는 지위를 낮추어 대답하고 싶다.
내가 실제로 감독이라면 인부라고 말하고 싶다.
유식하게 떠드는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이의를 말하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격’이 낮은 사람들과 왕래하고 싶다.

- 장 그르니에의 《섬》 중에서 -


* 장 그르니에가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적은 대목이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철학 교수를 지낸 사람이다. 68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학대상을 받기도 했다. 《섬》은 그가 쓴 여러 에세이집 중 하나다. 그가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무엇인가 감출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2중, 3중 혹은 그 이상의 생활도 영위할 수 있는 곳이 파리라는 것이다. 뭔가 감출 만한 일이 있는 사람이 어찌 장 그르니에뿐일까. 나를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도 장 그르니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서울은 파리에 못지 않은 훌륭한(?) 도시다.


ⓒ 사이버맨~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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