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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18 我要隱退致仕 !!!!! 내 책이 드디어 중국어로 출간된다.

2011/04/18 23:21

2011년 4월 18일. 내 일기장에 꼭 적어 놓고 기억해야 할 날 중의 하루이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치사(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가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의 출판사와 협의 중입니다."
"정말요?"
"혹시 지금 책에 있는 사진의 저작권이 작가님에게 있는 것인지요?"
"그럼요, 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협상을 잘 끝내겠습니다. 다음은 '대만'이고 그다음은..."

내 책이 중국에 진출하다니? 아니 '한국의 시니어 비즈니스'가 중국에 수출될 기회를 맞다니!


2010-10-13_MK.co.kr
 
 
 
태그 : 致仕, 은퇴, 중국, 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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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터뷰가 방송되었다더군요. 저도 못보았었는데

2010/10/26 23:31

http://www.kukinews.com/vod/vod.asp?idx=3780



며칠 전에 인터뷰하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오후 1시에 약속을 정했었다.

정각 오후 1시,
양치질도 급하게 마무리하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방송용 카메라 2대와 함께 촬영 기자 두 분과 취재 기자 한 분이 사무실에 뒤따라 들어왔다.
바로 그들이 일전에 약속을 했던 '그'들이었다.

애써 당혹함을 감추고
대회실에 자리를 잡고 액자 다섯 개와 책 대여섯 권으로 장식을 했다.
연습으로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딱 한 번의 대담으로 인터뷰는 끝났다. 진정 아쉽게

카메라는 철수되었고,
쪽지에 방송날짜를 적어주고는 사라졌다.
당혹스럽고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좀 더 성의있고 설득력있게 답변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면 됐어요."라는 답변도 안심되지 않았다.

예고된 일정에 따라
인터뷰 장면을 사진을 남기려고 카메라를 준비했지만,
예상대로 직원들은 협조하질 않았다.
물론 그들의 일상이나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고
예상했던 일이며 바라지도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섭섭함은 지워지질 않는 장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방송일짜가 꽤 지나고서야
지인으로부터 방송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찾아보았으나,
연결오류로 볼 수가 없었다.
재촉하는 지인과 궁궐탐방이 겹쳐
팀장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직접 내 인터뷰를 보았다.
"아쉽다."는 말 밖에는!

책을 쓰고 나서 이렇게 뒤치닥거리가 많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은 생각지도 않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탈고를 하고 직원들에게 저녁까지 샀던 것이 폭우 속 여름이었는데,
겨울의 문턱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내일 아니니 관심도 없고, 두어야 할 일도 없는데
자꾸 옆을 둘러보고 뒤를 돌아다 보고 있으니 이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닌가.
누군가가 옆 사람이 나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거기에다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하는
'나는 혼자다.'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니 말이다.


춥다. 마음도. 그러고 보니 계절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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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3막은 생각한 후 느리게 걷는 단계이다. 본문 중에서

2010/10/12 23:27

인생 제3막은 생각한 후 느리게 걷는 단계이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깨닫기보다 아는 것을 곱씹는 단계이다.
가장 의미 있는 시기이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내 삶의 가장 중요하고 숭고한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다.

느리게 걷는 제3막의 인생이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 있어서 몇 가지의 목적을 그리고 난 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만 허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8장 다시 청춘을 말하다 / p.287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

 
태그 : 은퇴, 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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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 '치사(致仕)'란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일을 일컫는다.

2010/10/0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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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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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솥의 찌게도 한 숟가락이면 제 맛을 알 수 있다.

2007/02/18 23:59

옛날 세상에도 관리노릇 하는 것이 의무규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 불러도 어떤 선비는 병을 칭탁하고 나오지 않거나 임금이 여러 번 부르면 마지못하여 포의(布衣, 두루마기와 갓을 쓴 백성)를 입고 대철에 들어가 임금을 뵙는 일이 있었다. 그런 때 임금은 선비를 탑전에 불러들여 “정치를 하는 요체가 무엇이냐?”하고 묻는 법이다. 그러면 선비는 옛 성현의 도리와 지금 세상의 시세를 논하고, 다시 임금의 다스릴 바 마음가짐이나 치세의 핵을 아뢰는 법이다. 그때 포의(布衣)의 자격으로 아뢰는 선비의 말은 신선한 맛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임금은 틀에 박힌 관료 주변의 적당주의 말만 들어오다가 선비가 아뢰는 까칠까칠한 말맛에 오히려 울증이나 체증이 넘어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고 또 깨닫기도 했다.

임금이 포의로 들어왔던 어진 선비를 두 번째 다시 부를 때는 대개 왕궁에서 관복을 하사하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임금을 두 번째 뵈올 때는 궁중에서 내린 관복을 입고 들어가는 법인데, 이처럼 억지로 내린 벼슬도 염치 있는 선비는 곧 사직하고 숨는 것이 예의지만 역시 인간사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비들은 글을 읽고 과거를 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렇게 얻은 벼슬은 일흔 살이 넘으면 치사(致仕)를 한다. 그러니까 치사는 요즘 말로 하면 정년퇴직인데 정3품 이상의 당상관으로 치사한 관리는 매월 술과 고기 약간이 연금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일흔 살이 넘었는데도 나라의 중대사로 인해 치사를 하지 못하는 1품관에게는 궤(几)와 장(杖)을 하사하였다. 궤는 팔걸이요, 장은 지팡이니, 일흔 살이 넘는 신하는 임금 앞에 나아갈 때도 지팡이를 짚고 갈 수 있고, 앉을 때는 팔걸이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궤나 장은 곧 한 나라의 영의정급 권위를 상징하였다.

이조 현종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지냈던 양파(陽坡) 정태화는 영의정 사표를 서른일곱 번이나 낸 끝에 수리되어 치사(致仕)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태화는 형조판서의 아들로 스물여섯 살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13년인 1635년에 사간 벼슬을 맡게 되었다. 사간은 관리들의 공사 잘잘못을 밝혀 임금에 보고하거나 임금의 처사에 잘못이 있을 때 그 부당함을 아뢰는 직책이었다. 사간원의 최고 책임자인 대사간이라야 정3품이지만 하는 일은 서슬이 퍼런 부서였다. 나라에 금주령이 엄한 때라도 사간원 관리들에게만은 술 먹는 것을 묵인하였으니, 이는 기를 죽이지 않으려는 뜻이었다. 사간들은 직책이 그러한 만큼 오랫동안 소언이 없으면 오히려 ‘임금의 허물을 덮는 죄’를 들어 처벌을 받았으니, 임금의 귀에 ‘듣기 싫은 소리’만 하는 직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산군은 사간원이라는 관서를 없애버렸는데 중종반정이 된 뒤 다시 생겨났다.

나이 서른세 살로 사간이 된 정태화는 도총관 유정량이 첩 얻은 일을 가지고 논핵을 벌인 일이 있었다. 유정량은 정태화보다 나이도 열세 살이 위요, 영의정 유영경의 손자요, 선조의 따님인 정휘옹주를 부인으로 맞았으니, 집안으로 보나 관계로 보나, 또 세상을 산 인생경력으로 보나 훨씬 윗길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제도를 봐서 양반들은 누구나 첩을 거느릴 수가 있었지만 임금의 사위만은 첩을 얻지 못하게 했다. 또 임금의 사위가 되면 절수(折受, 나라에서 떼어주는 토지)를 주어 편안하게 살게는 했지만, 높은 관직을 주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유정량이 어떤 백성의 딸을 첩으로 들어 앉혔다가 사간 정태화의 논핵을 받아 큰 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정태화는 곧 유정량을 찾아 논핵의 일을 사죄했다. 유정량의 아들이 출입을 막아 일곱 번째 만에야 두 사람이 마주할 수 있었지만, 정태화가 논핵의 일을 사죄하니, 유정량도 사간의 논핵은 옳은 일이라 하였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흔히 청백리라고 하면 개념은 덮어놓고 ‘가난한 관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청백리란 대체(大體)와 소절(小節)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크게 말해서 대체는 ‘나랏일’이고 소절은 개인 간의 사사로운 인정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고 하더라도 소절보다 대체를 앞세우면 그것이 청백리인 것이다. 대체를 세우기 위해 소절을 상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정태화였지만 칠십 평생 험난한 정국에 몸을 처해 살면서도 사사로이 남의 원혐을 산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처신이 깨끗하고 무슨 일이건 대체를 세워 소절을 누르는 처세를 했기 때문이다.

명절때면 의례 인사입네 하면서 미풍양속을 들먹이지만 선비정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혼탁하기 그지없다.큰 솥의 찌게도 한 숟가락이면 제맛을 알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르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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