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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는 '책임'이라는 단독적인 개념이 없다. '권한'과 공존한다.

2009/12/29 23:30
Winter_Snowing_Morning
[사진설명 | 폭설이 내린다고 엄포를 넣었던 날의 서울 아침 눈자욱입니다.ㅋㅋ 폭설이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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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권한, 김형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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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누군가는 분명하게 명령을 내려야만 한다.

2009/09/20 23:27
Fire_Works_In_Seoul_2008-10-0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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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정보도 예상치와 다를 경우 기상대처럼 혼줄나야 한다.

2007/07/27 23:57

Canon | Canon IXY DIGITAL 55 | Pattern | 1/40sec | F/2.8 | 0.00 EV | 5.8mm | Off Compulsory | 2006:10:18 08:50:43

지난 2006년 소로스가 강북 한 호텔에 나타났다. 당시 많은 이들은 소로스를 "보기"위해서 구름처럼...

증권시장이 폭락하면서 "검은 금요일"을 운운한다.

지난 목요일 하나 같이 증권전문가들 (나도 한 때 그들 가운데 있었지만)이 나선 시장전망은 더 이상 악재는 없었다고 하더니만, 폭락이후의 전망은 "이제는 조정국면이 불가피하다."고 또 엉뚱한 방향을 내세운다.

같은 브로커리지 회사에서 부장은 폭등을 예고하고 다음날 바로 아래 팀장은 조정을 예상한다. 치사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에서 증권시장을 예고하는 시황전문가들은 항상 애매 모호한 발언만을 한다. 결론도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다. 책임질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얼마전 스스로가 천재임을 자처하는 모 증권사로 이적한 K소장은 "내가 이것을 간과해서 증권시장의 폭등을 예견하지 못했다."라고 주말신문에 아주 커다란 반성의 글이 올라왔다. 아마도 그 기사를 읽어본 투자자들은 이젠 결코 하락없이 상승만 있을 것이라는 환각상태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망설이다가 더 이상 늦으면 후회할 것이다로 해석해서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폭락장을 보였다. 아마도 지금 시점에 K소장에게 되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벌써 1주일전 얘기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하지 않을까? 언어구사 전문가인 그들의 말주변에 투자가들은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내일아침 경제신문은 대서특필로 감정을 자극할 것이다.

"폭락장에서 용감한 개인투자가들. 그들만 샀다." 마치 항상 바보인 것처럼 개인 투자자를 농락하는 기사의 논조는 거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그런데 다시 짚어보면 개인투자자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들은 브로커리지 회사를 통해서 거래하고, 브로커리지 회사는 투자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상담을 서비스한다. 개인투자자들을 전담해서 상담하는 브로커들은 상담(결코 책임지는 조언은 하지 않기에 안전하다.)서비스를 받고 매매를 결정한다. (물론 투자자 책임이라고 명기되어 있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브로커는 그 회사의 유능한 시장전문가들이 매일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제공받고, 개인 정보채널을 통해서 수집한 투자정보를 개인투자자들에게 전해준다.

그런데도 왜 개인투자자들만 유독 "깨질까?" 그 유능한 브로커가 뒤에서 딱 버텨주면서 도와주는데... 브로커들은 개인투자자들이 매매를 많이하고 수수료를 많이 낼수록 더 많은 급여를 받도록 책정되어있다.

브로커는 개인투자자들의 수익률과 전혀 상관없이 급여를 받아간다.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건 이익을 보건 상관없이 그저 매매만 많이 이루어지면 좋도록 구조되어 있다. 다들 알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그냥 지나치는 아주 큰 맹점이 바로 이것이다.

한때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버려 너무 아쉬운 일이 되어버렸는데...

1. 시장전망은 일기예보처럼 누가 언제 얼마를 예상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관리되어야 한다.
 (결과를 보고 그 기대치와 시현치가 얼마나 오차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펀드매니저는 철저하게 수익률로 그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있다.)

2. 낙관적인 전망만을 선호하는 정서는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을 극히 싫어한다. 비관적인 전망이 자유로와야 바르게 시장을 바라볼 수 있다.)

3. 남의 시장전망에 대충 묻어가는 전문가들을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
(전문가라면 소신과 전문성을 결집해서 주장해야 한다. 용기없이 묻어가려면 자리를 버려야 한다.)

4. 브로커의 급여는 고객의 수수료 수익외에도 고객의 투자수익률과 연동되어야 한다.
(직접투자의 위험에 노출된 개인투자자들이 결코 브로커의 언변을 이기기 쉽지 않다. 설령 언변을 피해가더라도 시장이 만만하지 않다. 항상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5. 개인투자자들도 혼자 만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이긴 경우는 없다. 혼자서 이기는 경우는 가끔있지만, 그 가끔을 기대하는 것은 복권당첨의 기회와 마찬가지이다. 간접투자와 같은 투자방식을 생각할 때이다. 시장은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법인 투자가들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나 규모가 개인투자자들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정보에 의한 매매를 통해 큰 돈 벌 수 있다고 장담하는 얘기에 결코 휘말려서는 안된다. )

난 20년의 증권회사 생활을 마감했기에 자유롭다. 그 중 10년간의 브로커 생활은 참으로 힘든 일상이었다.
그런데 폭락장을 경험할 때마다, 아비귀환이 되는 개인투자자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그래서 시장은 움직이는지 모르지만...

이젠 증권회사의 리테일 부문도 "확"바꾸어야 할 때가 분명 다가온 것 같다.
아무리 가치투자를 정석투자를 내세우는 개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브로커리지(오로지 고객의 매매수수료에 의존하여 개인투자자의 수익을 외면하는) 를 통해 먹고사는 증권회사들만이 있는 상황에서는 상담을 통해 조언해주는 브로커들(수익원이 고객임에도 불구하고)이 결코 나를 돕는 아군이 아닐진데 시장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

소로스라면 어떻게 시장을 대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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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인 잘못에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2006/06/13 06:54

“눈사태를 이룬 눈송이들은 저마다 무죄를 주장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저질러지는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자신의 의사와 직접적인 관계없이 이루어진 범죄라 해도 결코 그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누군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 부정을 저지르면 다른 누군가에게 그 폐해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집단에 속한 개인으로서 그 집단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눈송이들이 모여야만 눈사태가 일어나는 것일 테니까요. 물론 집단의 힘에 대항하기는 쉽지가 않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은 분명 비겁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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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나약함에서 비롯됩니다.

2006/06/02 06:04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Not defined | Pattern | 1/125sec | F/5.6 | 0.00 EV | 18.0mm | Off Compulsory | 2006:04:23 13:18:02

갑자기 비가 오면 시야가 제한됩니다. "분노"는 감정의 시야를 가리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분노의 감정 뒤에 숨은 진짜 감정의 실체입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과 불행입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나약함에서 비롯되며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를 내고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화를 낼 상대가 있기만 하면 마음껏 분노를 폭발하고 자신이 느끼는 불행에 대한 책임을 그 사람에게 떠넘기곤 합니다. 스스로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에 대해 화가 난다면, 그 분노의 감정이 상실감이나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누구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변 사람들을 바꿀 수 없다면 당신이 먼저 달라지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놀라게 해보십시오. 저 먼저 시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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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자리에서 승리하세요

2006/05/25 06:20
Canon | Canon IXY DIGITAL 55 | Pattern | 1/60sec | F/2.8 | 0.00 EV | 5.8mm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06:02:13 15:53:50

아주 큰 시장이 있어도 호락호락 틈을 주는 시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친 파도와 씨름하며 대어를 끌어올리는 어부의 검붉은 팔뚝 위에 팽팽하게 솟아오른 푸른 힘줄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바다 사내는 지난 밤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배를 정비하고, 그물을 손질하고,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바닷길에 올랐을 것입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반드시 승리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정과 능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준비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여러분에게 ‘언젠가’라는 유예기간을 허락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기회는 아주 어렵게 찾아오지만 아주 쉽게 흘러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움켜쥔 리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리며 준비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러분에게 찾아온 이 순간이 당신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즈니스맨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맨들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품이나 아이디어 등을 판매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고,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오는 일은 무척 힘든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객에겐 권력이 있지만 여러분에겐 아무런 힘도 없고, 사업을 도와주는 조력자에겐 권력이 있지만, 여러분에겐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이 없는 자의 역할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태그 : 역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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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소재는 단수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2006/05/15 06:57

“책임을 가진 자만이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말입니다.

이 말은 너무 당연한 것을 동어반복으로 강조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의 있는 사람만이 무성의하게 행동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무지하게 행동할 수 있다.” 같은 말들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책임을 논할 때는 책임의 분명한 소재가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스가 들었던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카지노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내기에 거는 노름꾼은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기에 건 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그것은 범죄적 행위입니다. 만약 그가 가장이라면, 그 돈이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가 따든 잃든 관계없이- 그는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같은 예들을 통해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책임과 무책임의 문제는 개인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관계의 망’ 에 걸쳐 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책임의 소재는 단수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나라의 책임, 그 어느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단수들이 모여서 복수의 책임이 될 수 있지만, 애초부터 우리의 책임이라는 말은 그럴듯할 뿐이지 결국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임질 공인이 실종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책임의 영역에서도 사적 인간관계와 공적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적 인간관계에서는 ‘네 책임인지, 내 책임인지’ 책임의 소재를 지나치게 따지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 상호 포용과 책임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지나치리만큼 따져야 합니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은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며,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무책임한 결과에 대해 벌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조적 방어] 와 [알리바이의 역설]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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