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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04 혹시, 당신이 "경계인" 아니신가요?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라
Canon | Canon IXY DIGITAL 55 | Pattern | 1/60sec | F/2.8 | 0.00 EV | 5.8mm | Flash fired, auto mode | 2006:05:20 10:34:03
불국사에 있는 이 "목어"는 깨우침의 상징이지만, 성난 얼굴처럼 보입니다.
나는 1930년대에 태어난 일군(一群)의 학자들이 두렵다. 벌써 초야에 묻혀야 할 고희(古稀)의 나이에 은퇴는 커녕 두 눈 부릅뜨고 이 시대를 응시하는 그들 때문에 지질리고 주눅이 든다. 체험과 경험의 무게가 실린 논리적 비장함에 지질리고,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의 근대에서 진정성을 뽑아내는 사유의 무게에 주눅이 든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시대에 따라 칠락팔락했던, 그래서 경박하기 짝이 없는 베이비붐 세대 학자들에게는 든든한 방패막이자 참호와 같은 것이다.
일흔을 앞둔 사회과학자 권태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라”고. 날선 논리들, 세련된 서양이론들, 결핍 증세로 더 목청을 높이는 이 시대의 혁명아(革命兒)들이 재단하고 척결했던 우리의 ‘못난’ 근대와 ‘못난’ 체제들은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고 지금도 그런 까닭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진정 성낼 것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우리 자신’들이라고. 권태준 교수는 성난 얼굴들 사이에서 닦달하며 살아온 연유를 정리하고 싶었고, 순간순간 유혹하는 외제 논리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자신을 옹호하고 싶었다. 그 옹호는 결국 5년 공이 든 노작(勞作)을 낳기에 이르렀다. 정작 저자 자신은 “이제 혼자 갈 수 있다”는 홀가분함으로 이 책을 상재한 것일 터지만, 우리 후학(後學)들에게는 고통스런 사유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과장이 아니다. 노학자가 일으킨 역풍(逆風) 때문이다.
저자는 시대적 고민의 해결사로 자처했던 국가권력의 ‘부관(副官)’인 지식인들과 운동세력들이 자신만만하게 내놓는 역사 규정과 이데올로기들을 성실하게 음미했다. 그는 ‘세기를 뛰어넘는’ 한국의 속도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해석하는 발전국가론, 종속이론, 식민지근대화론 등의 담론으로부터, 잘못된 열정과 그 결과를 수정하려는 계급투쟁과 혁명론,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기획들을 아무리 뜯어봐도 버겁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런가? 왜 그 논설과 이론, 진단과 처방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가? 한국 근대의 ‘유별남’을 인식공간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한 세기를 단축해서 세계적 전범(典範)으로 등극한 개발독재의 유별남을 유별나게 해석하지 않으면 박정희는 그저 독재자이고 자연스런 역사진화의 훼방꾼이다. 서양근대와의 ‘차이의 철학’을 사유의 바탕에 깔지 않으면, 민족·국가 공동체가 민주주의 시대에도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토록 빠져들었던 낯선 ‘거대 설화’의 숭배자가 될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의 이름으로 시대를 뒤집고자 했던 혁명론들과 그들을 설레게 했던 ‘거대 설화’를 마음 편하게 뒤집을 수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난 학자의 힘, 그의 역풍은 거세다.
노학자는“역산(逆算)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오늘의 고지에서 지난 역사를 재단하지 말라는 훈계다. 또 “대중(大衆)의 눈을 흐리게 하지 말라”고 넌지시 권한다. 그들은 민주·혁명·진보·개혁과 같은 고담준론보다 ‘함께 살아가기’를 더 원했고, 또 그럴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가 우리 특유의 국가중심적 민족주의의 본질이었고, 그 정서로부터 자유와 민주가 태어났던 한, 변주곡에 우리의 귀중한 미래를 걸지 말고 ‘세계 시간대’에 다가서는 통로를 막아서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이 줄잡아 100여 개에 이르는 서구 고전과 한국 사회과학자의 거대이론 및 담론을 시원스레 등배지기 하는 역풍의 요지다. 끊어진 다리를 잇듯, 전후세대(戰後世代) 학자들과 요즘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폐기처분한 역사 현장의 증거들을 바느질하듯 잇대어 만든 사회과학적 사유의 그물망에 그득 잡아 올린 은빛 고기떼들을 노학자로부터 넘겨받았기에, 우리는 이제 지질리고 주눅들지 않게 될 터이다.
견해가 다른 분들이 그렇게도 굉음을 내고 질주를 할 때면, 폭주기관차 처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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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이 "경계인" 아니신가요?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Shutter priority | Pattern | 1/45sec | F/27.0 | +0.50 EV | 32.0mm | Flash did not fire | 2006:06:03 12:08:57
할머니의 굽은 허리는 마치 주변환경이 밖으로 몰아 그녀를 "국외자"의 신분증을 만들어 준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군대에서는 까닭을 모르는 집합이 꽤 많습니다. 이때 군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가운데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맨 앞줄이나 맨 뒷줄에 선 사람이 선택될 확률이 높아, 적어도 가운데 서면 본전은 하는 셈이므로 손해 볼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라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어느 문화권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문화의 중심부에 들어서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그 문화의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는 대체로 기득권자들이 굳건히 차지하고 있어서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늘 손해만 보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계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늘 불안하고 고독합니다. 중심부에 들어갈 자리는 없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기 있는 경계인이 나타나 변화를 도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화의 울타리를 새롭게 만들어가거나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변방의 지식인(Marginal Intelligentsia)'이라고 부릅니다.
성공하면 혁명가가 되어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지만, 실패하면 국외자로 전락해서 그 문화의 세계에서 떠나야 합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혁명가"와 "국외자"로 정확하게 분리해낸 듯한 생각이 드는 동네 한 구석에서, 앵글을 잡고 느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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