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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18) 스위스 민속공연은 시니어들의 독점부업

2008/10/14 23:58

융프라우에 부딪히는 바람도 거칠어 단번에 눈발을 수백 미터씩 날려보낸다.


[사진설명 : 융프라우 정상에 날리는 눈바람]

오후 4시 20분. 이제 바늘을 칼처럼 날을 세운 듯 아프도록 시리게 뺨을 때리고 날리는 바람을 피해 하산을 시작했다. 융프라우로 오르던 왼쪽 능선의 그린데 발트(Grindenwald) 노선이 아닌, 오른쪽 능선을 오르는 라우터브루넨(Lauterbrunen) 노선을 택했다. 여행객들에게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주어졌다.

[사진설명 : 산 기울기에 맞추어 아예 경사지게 좌석이 배치된 등산 열차]

석양에 부대끼는 능선들은 하얀 눈보라는 석양의 빛은 머금어 황금빛으로 눈길을 유혹했다. 눈으로 보이는 협곡과 빙하 그리고 바위산은 그저 사진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달리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일 뿐, 마치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그 깊이와 길이를 눈으로 측정하지 못하는 어둔한 그리고 막연함이 수치로 나열해 가는 인솔자의 말과 도저히 일치되지 않는 혼돈 감으로 진위에 대한 의심만 증폭되었다. 눈에 보이는 저 얼음덩이가 몇백만 년이나 되었다고? 저기 저 얼음덩이 높이가 몇 백 미터라고?

해발 2,061m의 클라이네 샤이데크 (Kleine Scheidegg. 2,061m)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20분. 이제 석양의 기세도 꺾이고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서야 융프라우가 속살을 보여주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행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결코, 쉽게 정상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융프라우, 그러나 우리에게는 관대했다.

세 번째에 와서야 겨우 융프라우를 볼 수 있었다는 한 동행 여행객의 감탄사에 무덤덤히 내려오면서 점점 쓸쓸하게 느껴지는 어깨를 쓰다듬던 여행객 모두는 그제야 히죽거리며 감탄의 꼬리말을 이었다. "정말 그렇다고 하네요. 제 친구도 그냥 10m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안개 속에서 컵라면만 먹고 왔다나요?" 그래도 오를 때의 설렘과 비장함은 찾을 수 없이, 피로와 추위가 엄습한 등산 열차는 전혀 살갑지 않았다. 가끔 빗면으로 산자락을 보이는 산들의 연속사열은 적당히 익숙해 있었다. 그저 특이한 것은 온갖 눈위에서 놀고 탈 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거기서 너댓살된 스위스 한 꼬마를 보았다. 녀석이 워낙 활달해서 초점을 잃었지만, 어딜 가나 아이들의 모습은 밝아서 좋다.

[사진설명 : 중간 기착지 및 하산 주변들의 광경. 아이 사진 포함]

저녁 7시. 정확하게 6시간 동안의 융프라우 여행이 마감되었다.

인터라켄 동역에 열차가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저녁 7시. 그러니까 오후 1시에 출발한지 6시간 만이었다. 역시 스위스의 시계처럼, 스위스 역에 걸린 시계처럼 아주 정확하게 열차는 움직였다. 열차에 내려서는  인터라켄 동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저녁식사 장소로 모두 지친 발걸음을 옮겨 슈피허(Casino Folklore SPYCHER)라는 민속공연 식당으로 들어섰다.

스위스의 민속 음식은 겨울과 축산에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치즈, 백포도주, 소고기…. 스위스 요리하면 대표적으로 퐁듀(Fondue)를 꼽는다. 백포도주와 치즈를 녹인 소스에 작게 썬 빵을 찍어 먹는 치즈 퐁듀(Fondue de fromage)가 아마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음식이다. 다른 퐁듀로는 샐더드 오일에 소고기를 튀겨먹는 미트 퐁듀(Fondue bourguignonne)가 있다. 우리 일행이 먹게 된 저녁은 미트 퐁듀였다. 맛을 따지자면 우리네 한우 등심을 숯불에 구워먹은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왜 그리 고기맛이 밋밋했던지.

스위스 민속공연은 정말 시니어들의 독점 부업임이 틀림없었다.

미트 퐁듀를 식탁에 깔아놓고는 민속 공연이 시작된다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연자들이 등장했다. 아뿔싸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여행객들의 입에 오르는 탄성은 입 모양을 합창하듯 똑같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 상큼하게 요들송을 불러줄 아가씨 공연자는 하나도 없었고, 물론 총각도 보이질 않았다.

질그릇에 동전 돌리기, 빨래판 박자 맞춰 긁어 소리내기, 스위스 혼- 길이가 족히 3m는 넘어 보였다.- 아코디언 연주, 소 방울로 연주하기 그리고 숟가락 부대껴 소리내기며 생활용품에 가까운 아주 단순한 소리 악기까지 스위스 민속공연은 소박하고 심지어는 단순의 극치를 보는 듯싶었다. 이 모두 시니어 공연자들의 몫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공연 마무리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되어서는 우리네 동네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푸근하게 다가와 함께 어울리며 춤추는 시간으로 맛없는 식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사진설명 : 스위스 시니어들이 주관하는 민속공연]

밤 9시가 되어 공연관람과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인터라켄에서 7박8일 중의 하루를 묵으러 숙소를 찾았다. 서서히 누적되어가는 피로감에 닷새째 밤은 기억도 없이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다음 여행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향한 7박8일의 여섯 째날부터 기록한다. 센강이여 나폴레옹이여 에펠탑이여 그대로 있어다오, 내가 온전히 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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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목록

7박8일 유럽여행 - (25) 묵었던 5개 호텔 돌아보고, 여행 마무리
7박8일 유럽여행 - (24) '에스까르고' 먹고 '파리' 떠나기
7박8일 유럽여행 - (23) 루브르 박물관, 딱 두 시간 동안 관람하기
7박8일 유럽여행 - (22) 프랑스 남자에게 동양 여자는 행운이라는
7박8일 유럽여행 - (21) 14Cm 빨간굽의 구두를 신었던 루이14세
7박8일 유럽여행 - (20) 파리는 '빛의 도시'인가 '꽃의 도시'인가?
7박8일 유럽여행 - (19) 괴테가 극찬한 '아름다운' 베른을 거쳐서 파리로
7박8일 유럽여행 - (18) 스위스 민속공연은 시니어들의 독점부업
7박8일 유럽여행 - (17) 3,454m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다.
7박8일 유럽여행 - (16) 융프라우 출발점인 인터라켄은 밝고 깔끔했다.
7박8일 유럽여행 - (15) 역사여행지를 넘어 자연여행지 스위스로 가다.
7박8일 유럽여행 - (14) 450년을 지었다는 대성당을 보고 감격하다.
7박8일 유럽여행 - (13) '카사노바'의 가면과 모자는 지금도 인기절정
7박8일 유럽여행 - (12) 바다와 결혼한 베네찌아, 물과 연애하는 곤돌라
7박8일 유럽여행 - (11) 베네찌아의 유일한 광장 '싼 마르꼬 광장'
7박8일 유럽여행 - (10) 곤돌라와 바포레또 사진을 원없이 찍어대다.
7박8일 유럽여행 - (9) 카사노바의 활동지였던 베네찌아를향해서
7박8일 유럽여행 - (8) 피렌체, 황혼 여행지로도 꼭 선택해야 하는 곳
7박8일 유럽여행 - (7) 돌덩이 하나에 역사를 기록한 '사비니 여인 약탈'
7박8일 유럽여행 - (6) 단테의 첫사랑을 찾아 피렌체를 헤매다.
7박8일 유럽여행 - (5) 오드리 헵번을 스페인광장에서 만나다.
7박8일 유럽여행 - (4) 까따꼼베에서 빤떼온을 향해
7박8일 유럽여행 - (3) 바띠깐 박물관에서 싼 삐에뜨로 광장까지
7박8일 유럽여행 - (2) 바띠깐 시국(市國)을 시작으로
7박8일 유럽여행 -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7박8일 유럽여행 - (0) 해외여행이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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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17) 3,454m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다.

2008/10/07 06:39
  유럽여행은 알프스의 한 자락의 쉼터 클라이네 샤이데크부터 계속된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만 올라도 알프스의 여름 풍광을 상상할 수 있다. 한여름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온난화의 영향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른바 눈이 샤워처럼 쏟아져 내리는 스노 샤워 (Snow Shower)를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야···. 야, 참말로 보고는 싶지만, 여름철의 스노 샤워를 위해 또 융프라우를 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냥 눌러앉고 싶은 생각은 왜 드는 것일까?'


[고도계가 2,366m를 가리킨다. 높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장면]

스위스의 융프라우 역시 내 발목을 잡는다. 물론, 어딜 가나 발목 잡히지만.

'젊은 처녀의 어깨'를 뜻하는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그러니 Top of Europe이 틀린 말은 아니다. 융프라우는 산의 이름이고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남서 방향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융프라우이다.

이 융프라우요흐가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12년이란다. 이른바 3.1만세 운동보다 7년 전에 3,454m를 철도로 정복한 곳이 이곳 스위스이다. 이렇게 높은 산에 철도로 오를 생각을 하다니. 아돌프 쿠에르첼러(Adolf Guyer-Zeller)가 설계를 했단다. 그의 흉상은 아쉽게도 그의 철도레일과 함께 계단 구석진 곳에 빛도 없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왼쪽 아래 사진 : 아이거반트 역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의 풍경]

바위산을 관통해 가면서 스위스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을 만들었다.

등산 열차는 고도에 따라 그 지형에 맞는 차량으로 바뀌기 때문에 중간마다 갈아타야 한다. 철도 노선은 산의 왼쪽 능선을 오르는 그린데 발트(Grindenwald) 노선이 있고, 오른쪽 능선을 오르는 라우터브루넨(Lauterbrunen) 노선이 있다. 어차피 인터라켄 역에서 왕복요금이 같아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고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오는 노선을 택했다.

클라이네 샤이데크 (Kleine Scheidegg. 2,061m)에 도착해서는 다시 융프라우요흐 행 등산 열차 JB(Jungfraujoch Bahn)로 갈아탄다. 진정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는 등산 열차인 셈이다.  클라이네 샤이데크부터는 바위산을 뚫고 만든 터널을 오른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까지 오르는 구간의 시간은 무려 51분. 컴컴한 터널을 오르는 등산 열차 안의 여행객들은 숨죽이며 긴장도가 높아가는 상황이다.


[100년전에 아이스미어 역을 건설하는 인상적인 사진이 걸려 있다.]

백두산은 2,744m 그리고 고산병이 발생 고도는 2,500m. 그 이상을 통과한다.

급성고산병은 고지대에서 증상은 두통, 나른함, 식욕부진, 숨찬 증세, 현기증, 구역, 구토, 비틀거림, 호흡곤란 등이 생긴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니 거의 수직에 가깝게 2,061m에서 3,454m를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은 가히 긴장이 될만한 상황. 중간에 전망대 아이거반트 역(Eigerwand. 2,865m) 정차하게 되면, 잠시 여행객들의 긴장을 풀어줄 좁은 창으로 날랜 창끝처럼 가파른 산비탈이 숨을 멈추게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려 부산을 피워보지만, 좋은 사진을 찍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어서 아이스미어 역 (Eismeer. 얼음바다. The Sea of Ice. 3,158m)에 도착하면 열차 안의 스크린에는 현재높이(current height 3,158m)를 가리킨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있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창밖은 얼음이 뒤엉켜 시야마저 온전치 않다. 전망대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온통 흰색과 그림자로 인한 회색 뿐이다.  거기에 바깥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찬 기운에 가볍게 뛰는 것마저 쉽지 않은 산소 부족을 서서히 느낄 수 있다. 통로 벽에 붙어 있는 100년 전 아이스미어 역의 공사장면이 흑백사진 네 장으로도 충분히 당시의 험난한 공사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스위스가 아니었다.


[컵라면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 어딜 가나 라면의 인기는 항상 수위권이다. ]

융프라우요흐 역의 최고 특산품은 '스위스 칼' 아닌 대한민국 N사의 'S 컵라면'

이미 1912년에 개통이 된 관광지여서 그런지 융프라우요흐 역에 연결된 전망대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체국'이 있다. 오히려 일본 우정국에서 세워놓은 빨간색 우체통이 주인인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우체국 옆에 있는 간이 식당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컵라면 앞에서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머리를 숙이고 식사에 몰입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난 그저 무심코 지나쳤는데, 아내는 동행 여행객들 사이에 젓가락만을 들고 용감하게 돌진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내로부터 "그 흔한 'S라면'도 안 사준 야박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역을 지나면 '플라토(Plateau) 전망대'에서 돌아오는 길이 바로 얼음궁전이다. 얼음궁전은 그야말로 빙하의 가운데를  깎아 만든 여행객들에게 눈요깃거리의 궁전이다. 왕이 살던 곳은 아니다. 그 많은 여행객이 지나치는데도 독수리 상 조각을 비롯한 이글루니, 의자 그리고 통로 모두가 빙하인데 더는 녹지도 더는 얼지도 않으면서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얼음궁전은 빙하를 뚫어 만들었다. 녹지도 얼지도 않게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신기할 뿐]

그리고 아···. 스핑크스 전망대. 그리고 융플라우가 보이는 바로 아래. 오후 3시 44분. 내 생애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딛고 있었다. 절대. 글로 여행기를 적을 수 없는 곳이다.

난 이곳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왕복하는 기간에 무려 1,483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니 다른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을 긁어대었다. 어디 자주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장면 장면이 이다지도 생경하고 이국적일 수 없었다.

조금 걸음 속도를 높이면 머리가 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동으로 발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이 신체의 운동을 제어하는가 보다. 세찬 바람도 낮은 산소 농도도 펼쳐진 장관에 비하면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스핑크스 전망대 벽에 누군가가 동판을 새겨 걸어 놓았다. 고도계는 3,618m를 가리킨다.]

전망대에 오르니 어디가 아이거(Eiger)인지, 어디가 멘히(Monch)인지, 어디가 융프라우(Jungfrau)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이 큰 광경을 좁은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구차하고 변변치 못한 것인지를 실감하면서 창조주의 위대함이 대지 가득 밀려들었다.

스핑크스 전망대 벽에 걸린 동판에 새겨진 성경구절이 그야말로 이 대목을 설명하는 가장 현명한 판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O LORD, HOW MANIFOLD ARE THY WORKS! IN WISDOM HAST THOU MADE THEM ALL: THE EARTH IS FULL OF THY RICHES. PSALM 104/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 시편 104편 24절.

누구도 지나칠 수 있었던 벽면에서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 동판을 보았고, 그 상황적 감동이 면도날같이 뺨을 스치는 예리한 바람결마저 나를 무디게 만들었다. 이렇게 순간순간을 감동하는 나를 보면서 난 여행중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현지 시각이 오후 4시35분.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유럽의 꼭대기에 정확하게 발자국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이어지는 여행기는 융프라우를 내려오는 과정과 반대로 내려가면서 보여지는 주변 광경들과 스위스 시니어들의 민속공연 그리고 스위스 음식 얘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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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 유럽여행 - (16) 융프라우 출발점인 인터라켄은 밝고 깔끔했다.

2008/09/30 01:17
이탈리아 밀라노를 떠나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다섯 시간 대책 없이 눌러 지친 엉덩이를 위로하기 위해 서둘러 내린 인터라켄은 아주 소박하고 반듯하고 조금은 냉정한 도시 느낌을 보여주었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인터라켄(Interlaken)'은 '호수의 사이'라는 의미로, 말 그대로 베른 주의 툰 호수(Thunersee)와 브린쯔 호수(Brienzersee)사이에 위치한다. 서기 1128년(우리나라 고려 인종 6년)에 생겨난 인구 5천 명의 소도시이다. 라틴어 '인터 라쿠스(Inter Lacus)'에서 유래하었고, 베른(Bern) 건너편에 있는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여행서에는 베른에서 배를 타고도 인터라켄에 올 수 있다고 한다.

식사를 위해 주어진 한 시간의 여유는 여행객 대부분을 면세점으로 이끌었지만, 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여행 열기를 실감할 수 있는 곳. 이 작은 스위스 도시에 한국인만을 위한 면세점이 있다니! 길밖에 나오니 코 끝을 찡하게 찬바람이 불어왔다. 건너편에 작은 아파트 벽에는 등산을 위한 암벽연습장이 특징적으로 눈에 들어왔고, 한산한 길거리는 원색을 적절히 가미한 강렬한 장식들이 가지런히 상가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H 자동차의 SUV도 버젓이 스위스 번호판을 달고 지나쳤다. 그 자동차의 운전자는 흰머리의 멋진 시니어.

[인터라켄의 길거리 풍경 그리고 H 자동차를 몰고 가는 시니어 운전자]

스위스에서 의외의 코리아 애호가를 만났다. 인터라켄 한 식당 주인이 그랬다.

식당에 들어서면서 탄성이 곳곳에서 불꽃놀이처럼 터져 올랐다. 식당 메뉴에서부터 시작해서 행글라이더 안내까지 보너스로 라면을 준다는 내용까지 모두 한글이 빠지지 않았다. 물론 주인은 스위스인. 그들은 지난 2002 월드컵 이후 한국에 매료되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는 현지인 종업원. 식사의 맛은 고등학교 앞에 줄져진 분식집의 수준을 넘지는 못했지만, 사과 한 알의 이탈리아 도시락에 실망한 위를 달래기에 충분할 만큼 '보너스'를 연발하며 만족할 때까지 음식이 제공되었다.


[사진설명 : 왼쪽 위의 어른 머리만 한 쇳덩어리는 소의 목에 달았던 방울]

누군가 본인의 외국어 수준은 여행을 할만하다고 했다면 최악에 가깝다.

외국어 수준을 판가름하는 기준을 얘기한다면, 돈 쓰는 외국어와 돈 버는 외국어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돈 버는 외국어 수준은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이다. 외국어를 사용해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얼마만큼 잘해야 하는지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돈 쓰는 외국어는 언어를 하기보다는 돈을 지불하는 것뿐이다. 외국인이 우리의 외국어를 외국어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돈으로 외국어를 이해해 줄 뿐이다. 반증하는 방법. 누가 여행 가서 외국어를 몰라서 물건 못사가지고 온 사람 보았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돈 쓰는 외국어를 자랑하는 것은 못난 소치라고 치부될 수 있다. 피렌체에 이어서 한국 여행객의 예의없는 처사를 목격한 곳도 여기이다. 그저 다녀갔다고 한글을 어디곤 남발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 제발 한글로 낙서 좀 하지 말았으면, 1천 원짜리가 식당 벽에 그득했다.]

아무튼 시선은 인터라켄을 남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알프스 정상'으로 쏠리었다.

젊음은 언제나 밝고 희망적인가? 인터라켄에서 지나친 현지 젊은이들은 참으로 활달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터라켄 동역 (東驛. Interlaken Ost)에 집결하였다. 걸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정상까지 오른다고 한다. 난 표지판을 통해 소개된 융프라우(Jungfrau)를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철도가 엮여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라켄 동역 앞에도 ASIA라는 동양식당이 있었는데, 특별히 한국식사 메뉴가 올라와 있었다. 인터라켄도 한국 여행객의 주요 거점임이 확인되는 국면이다.

인터라켄에서 그깟 '유럽의 꼭대기'를 기차를 타고 거저 오르는 것에 대해 긴장도를 높이는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날씨. 과연 융프라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상상태 그리고 또 하나는 산소가 희박한 산정상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건강상태가 문제이다. 지난 여행객 중에는 예상치 못한 고초를 당한 분들이 있다는 설명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치는 시선은 긴장 그 자체였다.

기상이야 하늘에 맡기고 따른다지만, 2,800m 이상의 산에 오를 때 산소의 공급이 희박한 것이 원인이 되어 고산증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누구라도 무심코 지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인터라켄 역 주변, 현지 학생들이 드믄 보였다. 역시 조용하다.]

어김없이 오후 1시 정각, 그린델발트를 향해 열차는 출발했다.


그린델발트 (Grindelwald)는 해발 1,034m에 있는 이른바 알프스 고봉을 향한 베이스 캠스이다. 해발 1,034m의 고원에 있으며, 두 곳의 빙하가 근방에 있어 빙하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이거봉, 슈레크호른, 베터호른과 같은 고봉을 등반하기 위한 거점으로 유명한 마을인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산기슭의 목초지에 야생화가 만발하여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겨울철엔 세계의 스키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린델발트까지는 자동차로도 여행할 수 있는 마을이다. 인터라켄의 해발고도가 567m이니 그저 500m만 오르면 된다. 인터라켄을 출발한 지 채 10분이 지나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뒤 1시40분.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설원으로 매혹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라켄 동역부터 그린델발트 역까지의 풍광]

그린델발트(Grindewalt)에서 클라이네 샤이데크(KleineScheidegg)행 열차로 갈아탔다.

클라이네 샤이테크는 해발 2,061m의 산악마을로 융프라우요흐로 향해 가는 열차가 떠나는 곳이다. 융프라우, 아이거, 묀히와 같은 알프스의 고봉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역 인근에 해발 2,472m의 라우버호른(Lauberhorn) 정상으로 가는 리프트가 있다. 융프라우요흐까지는 약 12Km로, 아이거반트와 아이스메어역은 암반에 뚫은 터널을 지나 도착하게 된다. 넓은 초원지대의 도보여행 코스가 잘 다듬어져 있어 역과 역 사이의 전원 마을을 감상하며 도보여행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고지로 문제없이 올라가는 열차의 비밀은 선로에 있었다. 톱니바퀴로 바퀴와 레일이 결합하여 단 한 번의 운행사고 없이 눈 내리고 얼음 어는 철길에 현지 주민과 여행객 그리고 관광객을 안전하게 옮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풍광은 아름답지만, 점차 춥고 눈 많고 높아짐을 실감케 해주고 있었다. 오후 2시 20분, 인터라켄을 출발한 지 1시간 20분 만에 클라이네 샤이데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눈을 즐기려는 사람으로 인터라켄의 한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발길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린델 발트 역부터 클라이네 샤이데크 역까지의 주변 풍광]

융플라우로 가는 철길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1. 인터라켄 동역 (Interlaken Ost. 567m)를 출발해서 2. 그린델 발트(Grindewalt. 1,034m) --> 3. 클라이네 샤이데크 (Kleine Scheidegg. 2,061m) --> 4. 아이거 역 (Eigergletscher. 2,320m)  --> 5. 전망대 아이거반트 역(Eigerwand. 2,865m)  --> 6. 아이스미어 역 (Eismeer. 얼음바다. The Sea of Ice. 3,160m) --> 7. 융플라우요흐 (Jungfraujoch. 3,454m)까지 오른다.

'자연은 인간에게 겸손함을 아무런 가식 없이 보이는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그래서 여행객은 상념만 떨쳐버리면 머릿속에 반듯하게 줄 그어진 두꺼운 공책과 끊이지 않게 잉크가 나오는 펜으로 자연 그대로의 겸손함을 담게 해 준다.' 자연을 만끽하던 스위스 알프스의 자락 한 역 귀퉁이에 한글로 쓰인 여행객의 쪽지에 남겨진 글이다.

난 이 대목에서 멋진 글귀가 생각나질 않는다. 설국의 눈 모양 머릿속이 그냥 하얗게 바랜 것 같다.

오늘은 1.인터라켄에서 3.클라이네 샤이데크까지. 융프라우요호로의 여행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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