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해당되는 글 4건
- 2007/02/08 '비보이를 사랑하는 발레리나'가 계속 살아있는 이유
- 2007/01/27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 2006/12/10 미리 준 "크리스마스 선물"에 만족하게 하는 법
- 2006/12/09 아이들의 "겨울나기" 준비는 되셨는지?
'비보이를 사랑하는 발레리나'가 계속 살아있는 이유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Shutter priority | Pattern | 1/200sec | F/5.3 | 0.00 EV | 75.0mm | Flash did not fire | 2006:12:10 16:30:13
이 춤은 헤드 스핀 (Head Spin)이다. 몇 가지의 춤 제목은 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b-boy, 비(b)는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를 가리키는 아주 함축적인 말이다,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남자를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았으며, 스포츠로도 각광받고 있다. 여성의 경우 비걸(b-girl)이라고 한다.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만들어져 퍼졌다고 한다. 흑인들 차지였던 뉴욕의 뒷골목에 히스패닉계가 몰려들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흑인과 히스패닉의 패권 다툼이 벌어졌다. 당시 비트가 강한 음악에 브레이크 댄스의 빠른 리듬이 입혀진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힙합을 출 때만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서로 상대 구역으로 몰려가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온갖 동작으로 묘기에 가까운 춤을 추며 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이 비보이들의 경연대회에 '배틀(Battle)' 이란 말이 붙게 된 이유이다. 이 때문에 폭력의 공포 속에서 생겨났지만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고 폭력과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의지가 담긴 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지식검색 참조)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만들어져 퍼졌다고 한다. 흑인들 차지였던 뉴욕의 뒷골목에 히스패닉계가 몰려들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흑인과 히스패닉의 패권 다툼이 벌어졌다. 당시 비트가 강한 음악에 브레이크 댄스의 빠른 리듬이 입혀진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힙합을 출 때만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서로 상대 구역으로 몰려가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온갖 동작으로 묘기에 가까운 춤을 추며 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이 비보이들의 경연대회에 '배틀(Battle)' 이란 말이 붙게 된 이유이다. 이 때문에 폭력의 공포 속에서 생겨났지만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고 폭력과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의지가 담긴 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지식검색 참조)
발상이 그러한데 기원도 다른 동양에 그것도 우리나라에 비보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고, 기업화하여 '비사발'의 출범을 보여, 지난 2005년 11월 27일 세계 최초의 전용공연장 비보이극장 개관하게 되었다. 2006년 5월 7일에는 한국 관광공사 공식 후원 등록을 받게 된다. 이제는 일본과 중국 여행객들의 관광코스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공연장에 관객으로 갔을 때, 이미 공연장은 꽤나 다국적인 관객들에게 자리를 배정하고 있었다. 우리의 원천문화가 아니기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다, 관람 전에 프리즈(Freeze), 윈드밀(windmill), 나인틴(Nineteen), 헤드스핀(Head Spin), 에어트랙(Air Track) 정도는 알고 보는 예의가 필요하다. 아무튼
과연 이 '비사발'이 계속 장기 공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적 욕구를 가장 확실히 간파하고 모든 관객을 흡수할 수 있도록 컨텐츠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키가 작아 체격적으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고, 무조건적인 외래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더한 흡입력, ...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사전 준비가 철저했던 것이다.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은 구차한 절차일 뿐이다.
'비사발'에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또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티켓을 두 장 보내줄테니, 좋은 자리를 배정해 주겠다고 (물론 공짜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비사발의 게시판에 올려놓은 내 사진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좋았다고 연락 받기는 처음이었다. 뭐 고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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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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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 "크리스마스 선물"에 만족하게 하는 법
온 가족이 한꺼번에 공연을 가기가 쉽지 않다. 취향도 취향이거니와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침 기회가 좋았다. 보고 싶은 공연이기도 했고, "사진촬영"과 "전화통화" 자유를 표방한 관람규칙이 맘에 들었다. 카메라가 거의 항상 차 안에 있지만, 공연에서 사진촬영은 참으로 주어지지 않는 기회였다. 그런데 사진촬영이 자유라니? 거의 50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는 한 시간 반동안 헐떡이며 촛점을 맞추었고, 급기야 카메라는 배터리 과다 사용에 따른 과열신호를 보이기 까지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촬영에 열중이다 보니 공연관람에 충실하지 못한 듯. 공연관람 이후 가족들은 KLAZE 햄버거 집을 들렸는데, 역시 공연에 대한 열기가 대화속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더 많은 사진은 아래 링크에 심어놓았다.
http://marketian.egloos.com/photo/15018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1) 2006.12.10 16:00 공연
http://marketian.egloos.com/photo/15020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 2006.12.10 16:00 공연
http://marketian.egloos.com/photo/15021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3) 2006.12.10 16:00 공연
사진은 사족에 불과하다.
http://www.sjbboys.com/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사이트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Not defined | Pattern | 1/60sec | F/4.0 | 0.00 EV | 18.0mm | Flash fired, auto mode, return light detected | 2006:12:10 17:33:55
"발레리나" 유은혜와 우리 아이들의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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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겨울나기" 준비는 되셨는지?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Not defined | Pattern | 1/60sec | F/4.8 | 0.00 EV | 52.0mm | Flash fired, auto mode, return light detected | 2006:12:09 16:33:54
내 맘에는 들었지만, 아내의 단호한 거절하에 불채택된 점퍼
오랫만에 온 가족이 "수출의 다리"를 건너 가산동일대를 뒤졌다. 부쩍 큰 아이들의 "겨울나기"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수출의 다리"는 우리 가족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2001년, 큰 애가 초교 4학년, 작은 애가 초교 1학년때, 광명으로 이사를 왔다. 안양천을 건너기만 하면 서울특별시였지만, 살고있는 경기도의 한계가 여실히 존재할 때, "철산교"를 건너고 "수출의 다리"를 건너는 일은 고향을 떠나서 타지에 적응하기 위한 가족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허접하기는 했지만, 이른바 브랜드 옷들이 산더미로 쌓여있고, 가격은 거의 "무게당 가격" 수준이어서, 다녀올 때마다 한 보따리씩 안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몸짐을 채워주기에는 재격이었다. 2003년 서울로 이사하면서 광명을 떠나게 된 이후 가족 전체가 한꺼번에 다시 와보기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이랄까.
아침일찍 아들녀석의 "겨울나기" 제안이 아내의 "구로행"으로 제청을 얻고, 오후에 "마리오"아웃렛으로 진입을 시도하게 되었다. 집에서 불과 20여분만에 근처에 도착했지만, 신호대기에 주차까지 30여분이 흐른듯 싶었다. 공장 창고에서 재고정리를 위한 시작이 이제는 어머어마한 단골고객을 바탕으로 높은 빌딩군을 이루고, 내방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상전벽해를 실감케 했다. 대표적인 틈새시장 공략이 주산업으로 탈바꿈한 사례일게다. 명칭도 "디지털 단지"로 바뀌었고 수 많은 벤처기업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곳곳에서 확장공사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서민들을 위한 의류백화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내 사이즈를 훌쩍 넘겨버린 아들 녀석의 몸집에 이옷 저옷이 걸쳐졌고, 체격관리에 소홀해 비대한 몸집의 딸 아이의 입도 귀에 걸렸지만, 정작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나의 몫은 하나도 없이 어둠이 밀려오는 매장을 빠져나왔다. 계란 하나를 통째로 넣은 "계란빵"과 엉성하게 만들어 파는 "녹차 호떡" 그리고 따끈한 오뎅국물이 피로와 허기를 달래주었던 행복한 외출이었다. 아이들과 화합하기! 내일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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