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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도 일양(日洋)절충요리 중의 하나이다.

2007/03/09 23:17

일본의 음식 역사 중에서 메이지 시대에 일어난 음식문화의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본격적인 서양요리를 흡수•동화해가면서 독특한 일양절충요리=양식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일양절충요리, 즉 ‘양식’은 한마디로 일본음식에 밀가루를 들여와 만든 요리인 셈이다. 돈가스라는 말은 프랑스어 ‘코틀레트’에서 유래되었다. 코트는 송아지나, 양, 돼지의 뼈에 붙은 등심과 등심의 형태로 자른 고기를 말한다. 영어로는 커틀릿(cutlet)인데, 이 요리는 송아지나 양고기의 뼈에 붙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밀가루, 계란노른자, 빵가루를 입혀서 프라이팬에서 버터로 양면을 갈색이 되게끔 구운 것이다. 이 커틀릿을 일본에서는 가쓰레쓰라고 불렀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눈동냥으로 배운 가쓰레쓰들이 등장했다. 쇠고기와 닭고기를 재료로 하는 비프가쓰레스와 치킨가쓰레쓰가 그것들이다. 비프가쓰레쓰는 스키야키처럼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에 등장하는 ‘포크가쓰레쓰’는 ‘돈가스’의 전신이 되었다.

이 ‘포크가쓰레쓰’는 쇠고기나 닭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쓴 가쓰레쓰인데, 1895년 긴자에 있는 양식집 ‘렌가테이’에서 첫선을 보였다. 포크가쓰레쓰는 1907년경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다이쇼 시대에는 이미 3대 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마다는 원래 궁내청의 대신부에서 서양요리를 한 경험이 있었고, 포크가쓰레쓰를 개량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고기를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해 독특한 가열조리법을 고안했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에 돼지고기의 두께는 2.5~3센티미터로 두꺼워졌다. 거기다 포크를 쓰지 않아도 되도록 칼로 미리 썰어놓아 일식처럼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양배추 채를 곁들이면서, 드디어 본격적인 일본인의 양식이 태어난 것이다.

돈가스의 뛰어난 맛 속에는, 세계 어떤 요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안심을 이용한 지혜가 들어있다. 돈가스 특유의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 돼지의 안심은 너무 연해서 요리의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 햄이나 소시지의 원료로밖에는 이용하지 못하는 부위다. 하지만 그 연한 육질에 주목해서 두툼하게 썰어 요리한 것이 바로 일본의 돈가스이다. 더구나 돼지고기에는 적당한 지방질이 있어서 시간을 들여 바삭하게 튀겨도 기름을 많이 먹지 않는다. 뎀뿌라와 돈가스는 기름의 온도를 조절해가면서 튀긴다. 이 조절이 서양의 요리사에게는 가장 어려운 기법이다. 일본인은 뎀뿌라를 튀기는 전통적인 가열기술을 돈가스에 응용한 것이다.

또 돈가스의 맛은 바삭바삭한 일본식 빵가루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유럽식의 고운 빵가루를 가지고는 일본식 돈가스의 씹히는 맛을 얻을 수 없다. 고운 빵가루는 고기에 균일하게 붙지도 않고 튀기는 기름만 더럽히기 일쑤다. 적당한 두께의 옷으로 튀겨지지도 않고, 먹었을 때 포만감을 주지도 않는다. 반면 돈가스에 사용되는 일본식 빵가루는, ①고기에 잘 붙고, ②수분의 증발을 막으며, ③잘 타지 않는다. 또 ④튀김옷이 기름을 적당히 흡수해 영양가를 높이고 풍미가 좋아지며, ⑤바삭하게 갈색으로 튀겨진다. 밀가루, 계란 푼 것, 빵가루를 세 겹으로 입혀 ⑥고기와 기름이 바로 닿지 않도록 했고, ⑦맛을 응축하고 있는 육즙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며, ⑧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며, ⑨그 먹음직스러움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출장지의 선술집에서 안주로 만난 음식 중에서 '돈가스'는 없었지만, 아침 부페에서는 어김없이 돈가스가 나왔다. 약 10년전 다이와종합연구소에서 학습하던 시절과 아주 흡사한 '돈가스' 이제는 한일절충요리, 즉 한국에서 맛본 '돈가스'가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의 대다수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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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교제하기 위해서 육고기를 먹는다.

2006/12/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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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육즙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벌써 맛이 없어진 상태이다.

1867년 1월 약관 열여섯의 나이로 즉위한 메이지 천황은 쇄국에서 개국으로 정책을 180도 전환시켰다. 메이지 신정부는 잇달아 근대화계획을 세웠다. 당시 지도자들의 고민거리는, 근대화의 격심한 차이도 차이지만, 위로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에 이르는 서구인과의 체형의 차이였다. 그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서구의 뛰어난 문명을 무리 없이 도입할 수 있을까,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론은 육식을 해금하고 서양음식을 보급해 체형으로나 문화적으로 서구인에 대한 열등감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었다. 일본인은 불교의 영향으로 7세기 후반 덴무 천황이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1,200여 년 동안을 육식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 기나긴 전통을 스물 한 살의 메이지 천황이 하루아침에 해금해버린 것이다.

1872년 1월 24일, 천황이 대신과 참의들을 궁중의 학문소(學問所)로 불렀다. 『요시이 도모자네 일기』에는 ‘천황, 서양요리의 만찬에 임하시다‘라는 글과 함께 당시 일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쟁쟁한 정치가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메이지 천황의 이날 회고담에는 “육식은 양생(養生)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외국인과 교제하기 위해 먹는다”라고 오쿠보 도시미치에게 전했다고 되어 있다. 서양의 사절단을 계속해서 초빙하는 판에 육고기 없이 생선만 있는 기묘한 일본요리만 내놓아서는 도무지 체면이 안 섰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 육식문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60년이 흘러 도쿄 우에노의 폰치켄이 ‘돈가스’를 처음 팔았다는 1929년은 사실은 양식이 가정에도 상당히 보급된 때였다. 그 60여년간 다양한 요리법으로 앞선 사람들이 고심하고 노력한 끝에 서민을 위한 양식이 쏟아져 나오고 음식문화의 정점에 달했을 때 바로 돈가스가 탄생했다. 돈가스는 양식의 왕자답게 우에노나 아사쿠사 같은 서민들의 거주지에서 전국 각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위세를 떨쳤다. ‘돈가스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면, 메이지 시대 양식이 시작된 이래 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겨우 일본의 서민들이 ‘육식’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한 조각의 돈가스에는 수많은 일본인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육식도 하나의 문화이고 산업이다. 음식도 목적이 있고 때가 있는 법, 그러나 연말에 집중되는 육식은 모두 교제를 위해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생각해 보니 거의 고기가 주음식이었다. 그러나 영양은 말짱, 황! 참, 식객도 일본의 음식이야기처럼 자료조사의 심도를  좀 더 깊이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감동은 오나, 깊이가 생각보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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