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권선물거래소는 5월18일 삼보컴퓨터에 법정관리신청설, 화의신청실, 채권금융기관공동관리개시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공시 답변 시한은 18일 오후까지이다. 이와함께 유가증권시장업무규정 제26조에 따라 삼보컴퓨터의 매매거래를 정지시킨다고 밝혔다.
2. 삼보컴퓨터는 이러한 채권단 결정에 따라 일단 최종 부도위기는 면한 상태에서 차입금 일시 상환유예 조치를 받는 등 회사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됐다.
3. 삼보컴퓨터가 경영난에 빠진 것은 델, 레노버 등 외국 저가 PC업체들의 수익성 이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에는 코스닥 신화를 창조했던 현주컴퓨터가 부도를 냈으며 그 전에도 나래해커스, 로직스, 현대멀티캡 등이 국내 PC시장에서 잇따라 사라져왔다.
삼보컴퓨터의 거래처인 부품업체들 역시 자금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연쇄 파장이 우려된다.
4. 채권단 공동관리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회생에 적용됐던 일종의 워크아웃 제도다. 이에 따라 이홍순 현 사장의 대표이사직은 일단 보장된다.
5. 삼보컴퓨터는 지난해 대차대조표상 결손금이 954억원에 달했고 지난해 순손실 162억원에 이어 1분기에도 29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경영실적을 기록해왔다. 지난해에는 자본잠식률이 77%에 달했다가 의무전환사채 발행과 자사주 처분 등 을 통해 자본잠식률을 35%로 낮춰 관리종목 지정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삼보컴퓨터는 농구단 매각과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자구책 시행을 통해 회사 정상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최근 출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주컴퓨터 부도에 이어 삼보컴퓨터가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감에 따 라 국내 PC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6. 국내 PC산업은 새로운 성장모멘텀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땅한 대체수익을 찾지 못한 채 이미 수년째 나락에서 신음하고 있다. 몇 년 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데스크톱PC 시장은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ㆍ대만 업체에 이미 기선을 빼앗긴 실정이다.
7. 삼보컴퓨터는 지난 17일 부도설과 1분기 실적에 대한 실망감으로 하한가를 기 록해 전날보다 200원 떨어진 1165원으로 마감했다.
삼보컴퓨터가 걸어온 25년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2005년 05월 18일
삼보컴퓨터는 회사의 역사가 곧 한국 PC산업의 역사일 정도일 만큼 국내 PC시장의 중심에 우뚝선 PC업체다.
국내 IT 벤처기업 중 원조격으로 전경련 멤버로도 참여할 만큼 입지전적인 기업이었다.
삼보컴퓨터는 지난 1980년 7월 청계천의 한 사무실에서 자본금 1천만원으로 이용태 명예회장 등 7명이 공동창업했다.
개인용컴퓨터(PC)의 개념이 확실치도 않은 당시, 국내 첫 PC 'SE 8001'을 개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84년에는 컴퓨터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삼보가 첫 PC를 만든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PC시장에 뒤따라 진출했을 만큼 삼보는 사실상 대기업과 함께 국내 PC시장을 성장시켜온 주역이였다.
이후 삼보는 엡손과 OEM공급계약등을 통해 사세가 성장하며 지난 89년 액면가의 500%인 주당 3만원에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이후 국내 컴퓨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함께 양강체제를 구축하며 소비자들에서 확실한 이미지를 심었다.
우수한 인재들도 속속 영입됐다. 현 인터넷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허진호씨와 삼보컴퓨터의 핵심 브레인 정철 부회장 등이 회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삼보에 젊은 피를 수혈해 성장동력을 제공했다.
90년대 들어서는 나래이동통신을 설립해 무선호출시장에 진출했다. 이것이 큰 성과를 거둬 당시에는 오히려 SK텔레콤의 무선호출사업을 위협할 정도였다.
이밖에 창투사 인수, 벤처 투자 등을 통해 수많은 계열사들을 일궈가며 '삼보왕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회사만 해도 나래이동통신, 솔빛, 아이네트 등 수십여개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정보통신 전문 준재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삐삐' 사업에 이어 '씨티폰'이 PCS의 출현과 함께 몰락하며 곧바로 IMF가 시작됐고 삼보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IMF 폭풍을 피할 수 없었던 삼보 역시 1998년 초 심각한 부도위기를 맞는 등 휘청이기도 했지만 이용태 명예회장과 이홍순 사장이 사업수완을 발휘해 위기를 벗어났다.
IMF시 삼보컴퓨터는 미국에 저가 컴퓨터 업체 이머신즈와 국내에 초고속인터넷업체 두루넷을 설립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것이 99년의 IT열풍과 맞물리며 호기로 변했다.
99년 12월 두루넷은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했고 이듬해인 2000년 3월에는 이머신즈도
나스닥에 입성했다. 삼보컴퓨터의 주가도 하늘 높은 듯 모르고 상승했다.
그러나 나래이동통신, 두루넷 등 자회사들의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고, PC 시장 역시 포화상태에 접어들기 시작들며 다시 피어오르던 삼보의 불꽃도 다시 사그러 들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3~4년여간 삼보컴퓨터는 부침을 거듭하며 회생을 위해 노력을 거듭했지만 결국 흐름을 잡은 물줄기를 되돌리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