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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늦은 밤이어도 오랜 친구는 반갑다.

2006/10/05 23:28

직장 초년생활 때, 추석 전날은 친구들 모두 고향을 찾아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그런 날이었다. 만나는 장소를 다방으로 하면, 돈을 벌기 시작한다고 어른들 흉내를 내며 고깃집이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지만, 그래도 가장 백미는 지방 소도시의 대로를 대여섯명이서 줄지어 걷는 것이었다. 여기 저기서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만나게 되고, 과장된 인사를 나누는 거리는 불과 2~3 Km 밖에 되지 않았지만, 순례지처럼 A도로를 친구들과 어울려 걷고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장소이기도 했다.그래도 그 시절은 질서가 있어서 지나치는 이들의 서열은 분명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쉽기는 다음날이면 각기 집안풍습에 따라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면 추석날 오후에는 뿔뿔이 흩어져서 직장이 있는 곳을 떠기에 절절하게 움직임은 빠르고 경쾌했다.

그래서 추석전날의 밤은 아쉽고 부족하기만 했다. 때때로 인사드린 다는 명목으로 친구녀석들의 집을 돌아가며 방문이라도 하면, 친구 부모님은 내자식처럼 반가워하며 직장생활이며 가정을 이끌기 시작하는 얘기를 들으시며 즐거워 하셨다. 물론 학창시절에 뵈었을 때보다는 대해주시는 말씀도 더욱 다감해지셨고, 무엇보다도 관심어린 대화상대자로 대해 주심이 큰 변화였다. 차례상에 오르기 전 음식도 가끔 먼저 맛보는 기회가 있기도 했지만, 늦은 밤의 모임을 아침까지 이어가지는 못했다.

사회생활도 10년을 훌쩍넘어 20년을 바라보는 시기가 되니, 친구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하나 둘 씩 낳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의 사이는 가장이라는 책무에 집중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거리를 쏘다니며 지냈던 일들은 까마득히 추억속에 일들이 되어버리고 있다. 그 사이에 부모님 대신해서 우리들이 집안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고, 다들 고향에서 추석을 지내는 일조차 우리들의 거처를 중심으로 추석이 명절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어른을 모시고 서울에서 추석을 지내다 보니, 추석이면 풍성한 가을겆이 보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녁 늦게, 온가족이 아파트 옆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가운데 남쪽 하늘에 힐끗 힐끗 보이는 하루남은 보름달을 보면서 "아무리 늦은 밤이어도 반가웠던 친구들"을 생각했었다. 이번 추석에도 친구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고, 문자와 전화통화로 그나마 그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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