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7.05 (5/8) NewYork 캐미칼뱅크, 살로만브러더스, 메릴린치 방문
0800
데니정을 기다림. 본격적인 MANHATTAN으로의 출발을 앞둔 날이다.
이날은 어느 누구도 카메라나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장비를 휴대하지 않았고, 출근 때와 같은 모습으로 준비를 했다.
미국에서의 정장 차림. 그들의 출근 모습과 어떤 다른 모습을 할까.
호텔에 양복장에 꼼꼼히 챙겨 두었던 양복 관련 정장 관련 장비를 점검하고 무장했다.
0830
데니정이 30분 늦게 도착했다.
전일 그는 MANHATTAN의 러시아워를 걱정하면서 CHEMICAL BANK의 도착 시간을 걱정했는데,
정작 가이드 때문에 출발 시간이 더 늦어졌다.
우리는 쉽게 분노했고, 그에게 $50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숙소인 NEW JERSEY주에 있는 MEADOWLANDS SHERATON HOTEL에서 동쪽에 NewYork주 NewYork CITY가 있었고,
HUDSON RIVER를 LINCOLN TUNNEL을 통해서 강밑을 통과하는 것이 지름길인 것이다.
며칠 전 TOLL COLLECTOR들의 파업이 종료되었는지 통과 요금을 내려는 행렬 때문에 지체되기 시작했고,
다들 도착 시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절대 절명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데 TOLL GATE위에 이상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WEEHAWKEN STADIUM! 지하 터널 입구의 경사면을 깎아서 야구장을 만든 것이다.
NEW JERSEY쪽에 위치한 것이긴 하지만 발상과 실행이 조화를 이루어서 야구장을 만들다니...
운동장의 바닥은 잔디가 깔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을 활용하는 지혜가 자꾸 머리에 아삼삼하게 떠올랐다.
과연 NewYork의 러시아워는 볼만했다.
많은 거리가 ONE-WAY 표시가 되어 있고 차들은 많았지만, 차가 거의 멈추는 일이 없이 서행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그들 나름대로의 양보 예절이 투철하게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한 대씩 통과하기.
늦을까 걱정했는데. 정시 이전에 도착했다.
가이드와 인솔 과장은 0930을 과장해서 0910에 CHEMICAL HEADQUARTERS에 도착시켰다.
광장처럼 넓은 CHEMICAL본사 앞으로는 30M정도의 길이 열려져 있고,
그 큰 건물에 출근 시간에 입구가 번잡하지 않다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20분을 지체하는 동안 출근하는 New Yoker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가죽가방이나 핸드백 등 가방을 모두들 가지고 행렬을 이루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었다면 여기서 모두들 볼 수 있었다고 나 할까. 나이를 모를 그들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거리를 지나쳐 자기의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가끔은 뛰어가는 사람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결코 뛰어가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여자들의 출근 모습도 우리네들처럼 깍듯한 복장에 화려한 장식이나 고급스런 옷차림은 전혀 볼 수 없었다. NewYork의 옷값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는데. 겉치장에 별로 흥미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통설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눈에 띤 것은 신발이었는데 흰색 조깅화와 흰색 양말을 신은 정장 차림의 아가씨들이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건물 동쪽 모서리에는 조그만 가판대가 있었고, 아침 식사 거리를 챙겨서 건물로 총총거리며 사라져 가는 이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수돗물을 식수로 하는데도 빵 봉투에는 반드시 콜라나 주스 등의 음료수를 꼭 챙겨 놓고 있었다. 건물에 막 나와서 길거리를 향해서 외치는 한 작은 조각품이 있었다. 조각가의 이름은 기록해 두질 않았는데, "TAXI"라는 제목의 조각품은 건물 크기에 안 맞게 나의 키와 유사한 높이에 코드를 입고 가죽가방을 든 사내의 TAXI잡는 모습을 연출한 것인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보존 상태가 좋았다. 결코 남의 것은 손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현지법인의 이일태차장이 통역과 안내를 위해서 CHEMICAL BANK앞으로 나와서 약속 시간을 같이 기다렸다.
0930
NewYork은 법으로 실내에서 흡연이 금지하고 있다. 흡연자들이 설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NewYork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건물밖에 나오면 흡연가들은 담배를 빨아 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는 모두들 발로 비벼 끄고는 총총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쓰레기통을 쉽게 볼 수 없는 곳이 New York이고 생각보다 길거리가 깨끗한 곳이 New York이었다. 물론 John D. Siara라고 하는 루마니아계 우리의 안내자도 애연가로 건물 밖에서 우리를 만나고는 연장 두 대씩이나 빨고서 안내를 시작했다. John D. Siara Vice President Asia-Pacific CHEMICAL HEADQUARTERS 270 Park Avenue New York, NY 10017-2070 212/270-3259 WE HAVE A NUMBER OF WELL-ESTABLISHED CONNECTIONS WE HAVE REGIONAL OFFICES IN ALL MAIN CITIES 위의 글귀가 그들이 제시한 첫 번째의 자신감이었다. 그리고는 SERVICE가 그들의 일,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임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이사가 있고, 직원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사가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그는 SERVICE를 강조했다. 창구는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고 일반인들을 위한 TELLER SERVICE창구(11-20), 기업인을 위한 BUSINESS SERVICE창구(1-10) 그리고 $25,000이상의 특별 고객을 위한 SELECT BANKING창구 (21-25)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현금을 다루는 창구는 천장까지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기다리는 것이 습관 되어 있는 그들에게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따로 있지 않았다. 24HOURS SERVICE를 강조하는데 그들은 발달된 통신망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이 SERVICE LINE FACTS라는 SERVICE이다. 전화를 하기만 하면 원하는 거래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바로 TELLER가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체, 분실신고, DEPOSIT등. 미국인들은 은행거래에 있어서 CHECK ACCOUNT와 SAVING ACCOUNT두개를 갖고 거래를 하는데, 잔액 부족이라는 든지 결제일 지연과 같은 문제로 고심할 필요가 없이 자동적으로 이체가 이루어지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간에 대해서 흥미롭게 자랑을 하고 있었는데 보통 3분에서 4분 정도이면 해결이 되고 가장 복잡한 일이라도 MAXIMUM 3DAYS라고 한다. 자리를 옮겨서 세미나 룸에서 계속되었다. THE TRENDS IS PHONE. ATM & HOME-PC. 1980년대 후반부터 은행과 증권업의 겸업이 허용되었고, 모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CHEMICAL BANK는 1991년부터의 CONSOLIDATION MHD+에 따라서 14,000개의 BANKS들이 통폐합을 거치면서 11,000개의 BANKS로 축소된 것을 인식하고 결심하기를 힘을 길러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5년이내에 증권사와의 JOIN를 통해서 FINANCING을 석권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함. 그는 미국내에 은행의 숫자가 많은 것은 ECONOMICAL한 이유보다는 POLITICAL한 이유를 들면서 은행간의 지역 할당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SUBSIDIARY(현지법인)를 통해서만 지역월담이 가능한 현실을 설명. 나의 짧은 영어로 던진 기계화의 진전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하는 일은 단지 SERVICE하는 일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인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그 유명한 일화가 될 한마디 말을 졌다. " ONLY ONE PERSON,ONE DOG & MACHINES MAKE BANKING SYSTEM" 개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사람은 개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 필요하며, 단지 기계가 주요한 일은 다루게 된다면서 고객이 꺼리는 비용 발생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전산화(기계화)를 빨리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 또한 신규 고객의 창출보다는 기존 고객의 관리에 우선해서 기업을 영위하는 것을 제일로 삼고 있음을 강조, 한정된 고객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설명. 자리를 뜨면서 동양식 인사를 했다. John D. Siara와의 명함 교환이 그것이었다. 수집이 취미는 아니지만 혹시 그를 FORTUNE지에서 만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세미나가 끝난 후 그는 문밖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1200
현지법인 회장님과 함께 점심 식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인사 발령이 결정된 상태여서 그러신 지 손님들에게 융숭한 식사 기회를 주셨다. 내 옆에는 그 주간 조선에서도 실렸던 유명한 HEE S. CHOI ( 최희석 차장 )가 앉았다. 그는 170Cm정도의 키에 짧은 스포츠형에 가까운 머리가 반백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깡마르고 금테 안경을 꼈었다. 생선전골인 듯 싶은 식사는 한국 그 어디 유명한 식당에서 먹을 때처럼 아주 맛깔스러웠다.
우촌 (WOOCHON) NYC: 8-10W 36th (Bet. 5th & 6th Aves) (212) 695-0676 FAX (212)465-2461
1300
현지법인 세미나에 참석키 위해 자리를 일어섰다. 현지법인은 CHEMICAL BANK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DAEWOO SECURITIES (AMERICA) INC 101 East 52nd Street MANHATTAN TOWER 28th Floor NewYork, NY 10022
1310
미국 현지법인의 김형진사장님을 시작으로 특강이 시작되었다.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작은 책자까지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작은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1630
SALOMON BROTHERS에 도착. 여기는 도착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검색하는 경비들의 허리에 찬 권총하며, 방문객의 숫자를 헤아리는 눈총들이 거부 반응도를 지독히 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숫자 헤아리기와 그곳 직원인 임영#차장과의 전화 연락과 사전 예약 여부를 확인한 뒤 우리 일행에게 가로3Cm 세로 4Cm정도의 진달래 빛의 스티커 비표에 이름을 써서 붙이라고 설명한 뒤 우리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통과 허락을 했다. 잠시 뒤에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YUNG BONG LIM Vice President Salomon Brothers Inc Seven World Trade Center New York, New York 10048
우리는 세계 제1의 채권매매의 본산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3층정도의 높이를 가진 TRADING FLOOR의 한쪽 면을 관람하기 위한 통과 벽으로 2층정도의 높이로 투명 창을 통해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300여명의 직원들이 각기 다른 자세와 관심거리로 열중이었다. 이중에는 연봉이 24억원이나 하는 재벌급 직원들과 2,400만원짜리의 연봉인 직원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구분 즉 급여에 따른 자리 배치의 특이점과 같은 것은 그들만이 알고 있도록 되어 있는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도록 평이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모니터의 숫자가 많게는 8개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자리에서 콜라를 마시면서 일을 하거나 심지어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직원까지 눈에 띠었다. 모니터에는 보안경을 전혀 볼 수 없었고, 모니터 위에는 다들 유명한 운동 팀들의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얹혀 놓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TV를 시청하기도 하는 그들은 연방준비위원회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날 연 방준비위원회에서는 금리의 $1/4인하를 발표했다. 채권이 우리나라의 주식보다도 종류가 많고 거래 대금이 많다고는 하지만 수수료까지 없어진 우리나라의 채권매매 전부를 이곳에서 TRADING하더라고 1/10정도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난 Salomon Brothers의 임영봉차장은 본디 COMPUTER ENGINEERING을 전공하고 PROGRAM개발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는데 재미1.5세의 교포라고 설명하면서, 발탁되어서 BOND TRADING을 하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응대하였다. 자리가 특별히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그 외에도 한국계 동료가 4명정도 더 있다면서 한참 동안 FLOOR를 보고서 손을 꼽고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은 어느 특정인들의 국가가 아닌 모두들의 국가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것만을 강조하면서도 우리는 우리 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165Cm정도의 자그만 키에 귀공자 타입의 그는 우리의 선망에 눈동자에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면서 겸양과 성실로 우리들의 질문 하나 하나에 답해 주었다. 우리들의 주된 질문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하고 얼마나 받고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냐 등의 직장 생활의 일반적인 것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초지일관 미국이란 곳에 와서 진정 그들의 일상적인 실생활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700
자리를 옮겨서 MERRILL LYNCH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직원들은 벌써 지치기 시작했고 일정과 더불어 기온이 뜨거움으로 장식되어서 더구나 아직도 시차 적응이 어려웠던 몇몇 동료들에게는 고행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피로에 긴장을 섞어 가면 세계 제1의 증권사 한 귀퉁이를 적극 만나기로 했다.
Don ####
Merrill Lynch Private Client Group
Vice President Business Financial Consultant
1185 Avenue of the Americas New York, New York 10036
212 382 8529 800 999 1185
FAX 212 764 6822
우리가 만난 Don ####은 50대 초반에 증권사 일선에서는 물러나서 후선 에서 지원업무을 해야 할 나이일 성싶은 초로의 신사였다. 동양권 출신인 들의 특유의 표정이 얼굴 한 가운데를 자리를 잡고 있는 그는 한국을 떠나온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한국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저 이제는 미국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성공담을 들어주러 먼 고향에서 온 젊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환대했고 우리네들이 보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한 진귀한 다과를 입구 한 쪽이 그득히 준비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네 지친 동료들은 먹기를 대부분 거부한 채,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고 그의 어조는 오늘 만난 30대의 젊은이들보다 간한 어 조로 또렷하게 한국말을 섞어 가면서 미국 최고의 증권사의 장점과 방향을 엮어 내려갔다.
"WITHOUT RESEARCH NO SALES"
MERRILL LYNCH의 강점을 표현한 대목이 그들의 첫 번째 제시하는 방침이다. 미국의 15년전 상황과 한국 증시의 현재가 유사하다는 점을 피력하면서 말을 꺼냈다. 미군 문관 생활을 거쳐서 현재의 위치에 와 있는 그는 FIRST CLASS CLIENT를 약 800명정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의 고객 관리 상황을 설명했다. 과연 FIRST CLASS는 어느정도의 투자 고객을 말하는 가. 1995년에 600BILLION에서 1TRILLION을 목표로 자산 증대가 가장 큰 목표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중의 MAIN STREAM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있다고 자산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들은 [FINANCIAL SERVICE INDUSTRY]를 구축하고 있어서 BANKING , REAL ESTATE, RISK MANAGEMENT(INSURANCE), SECURITIES, Others ( Etc TRUST, PRIVATE PLACEMENT, MONEY MANAGEMENT)등의 다양한 금융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SECURITIES를 가장 먼저 꼽지 않았는가? 저의는 그들이 단순한 STOCK BROKER가 아닌 FINANCIAL CONSULTANT가 그들의 주요 임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였다. 그들도 고충의 대상이 되고 생존의 매개가 되는 고객 관 리의 최선은 HUMAN CONNECT를 꼽았다. 즉 TRUST와 HONESTY가 가장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의 최선의 방책임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는 신분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이에게는 고문 변호사, 주치의와 함께 증권사 직원 즉 FINANCIAL CONSULTANT가 필요하다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격상시키고 있었다. 고객과의 분쟁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경우에는 증권사 직원이 제시했던 RESEARCH를 빌미로 법원에서 변호사를 통한 법적인 청구를 한다고 그들의 어려움을 설명. 한국 증권사에 가장 당면한 과제는 고객이 원하는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라면서 다음 세 가지 비법의 공개를 통해서 자산 늘기기에 총력을 기울이라 고 격려했다. 그는 첫째로 KNOW YOUR COMSUMER! 둘째로 SUITABILITY. 셋째로 CREATIVITY를 꼽았다. 타증권사보다 2배나 높은 PRODUCTIVITY를 갖추고 있다면서 수수료 수입의 40%가 직원의 수입이 되고 12,000명의 직원중 1/3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STOCK BROKER를 SUPPORT하는 일이라고 직원 현황을 설명하면서 향후 이들의 SUPPORT인원을 1/5수준으로 감축하는 방향으로 기계화 진척도를 설명. 또한 인간 혁명 즉, 기계가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을 빌미로 DOWNSIZING이 진행되고 있으며, 정보화의 진척에 따라서 RETIRE하는 숫자를 늘려 나가게 되며, 추세에 부응하지 못하는 탈락 계층에게는 그들 특유의 명예퇴직이 기다리고 있다고 조언을 첨가했다. 미국 증권사에서 직원을 관리 유지하는 기준은 첫 번째로 연조를 꼽았고, 둘째로는 GROWTH 업무 신장도, 셋째로는 최근 3년간1주일에 1 ACCOUNT가 개설되었는지 마지막으로 관리 자산의 1%가 RETURN되는지에 대한 수준을 평가한다고 4가지 항목을 나열했다. 미국에서도 경험이라는 무형의 KNOW-HOW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미국인 중 8백만 명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고 이들 중에 5백만 명이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MERRILL LYNCH에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비공식적인 통계 상황을 말하는 그는 저녁8시에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30여분을 가득 메우고 8시가 다 되어서야 젊은이들과의 자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는 못 다한 말을 남긴 듯 그 긴 시간 동안의 열변에도 아쉬워하는 기색으로 그들의 창구로 안내했다. 고객이 앉아서 상담할 자리가 없었다. 일반 사무실과 다름없이 직원간의 일정 간격을 유지한 체 7~8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창구 같고 소위 상담 창구 식으로 개인 비서들이 앉을 자리까지 갖추어진 조그만 사무실까지 우리네 사무실보다 오히려 검소하기 이를 데 없다는 느낌을 가졌고, 책상 위에는 모니터와 키보드 외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질 않았다. 단지 POST-IT정도만이 단정하게 붙여져 있고, 더위에 못 참는 듯 한 자리에는 50년대식 선풍기가 성조기를 앞에 매단 체 돌고 있었다. 저녁8시인데도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젊은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들의 일상도 우리네처럼 가끔은 나머지 공부를 요구하고 있는 듯했다. 사무실에 희한한 도구가 있는데, 이들도 우리들처럼 OPERATOR가 따로 있어서 주문을 자리에서 신속하게 보내기 위해서 캔 사이다처럼 길쭉한 알루미늄 통에 주문표를 집어넣고 압축 공기로 쏘아서 OPERATOR에게 전달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이런 구식의 장비를 사용하는 게 의아스러웠고, 각자 자기의 통을 구별하기 위해서 빨간, 파란 테이프로 감아서 식별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참으로 이채로웠다. 한 쪽 자리에는 TRAINING하는 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자리가 있었는데, 자리만 후미진 곳이었지 책상의 집기나 자리의 크기 등은 차이가 없었다.
2000
오늘 저녁은 아주 특별한 저녁을 먹으러 스페인 식당에서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15을 추가하면 근사한 세시간짜리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간 곳은 Maison Spanish Restaurant! 식사의 주요코스는 바닷가제와 스테이크요리였다. 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긴 스테이크의 크기는 한국에 있는 우리식구 다섯명이 모드 먹어도 됨직한 크기였다. 거기에 볶은밥까지. 그리고 술은 얼음을 넣은 White Wine과 과일을 잘게 잘라 넣고 얼음을 둥둥 뜨게해서 먹는 Red Wine. 바닷가재는 냉동가재를 녹여서 만들었는지 맛은 좀 덜했고, Soup은 콩을 푹- 삶고 거기에 채소를 거의 누렇게 삶아서 꼭 옛날 개죽같이 끓여서 한 사발. 도무지 양부터 질려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말로 이 저녁만찬은 너무도 맣은 식사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맛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다.
2130
저녁때 숙소에서 재무장한 우리들은 $20씩 갹출해서 뉴욕밤거리를 걷기로 했다.
시내로 들어오기 전에 뉴저지에 있는 Hamilton Park에서 잠시 New York City 야경을 바라보았다. 뉴욕의 대표적인 야경은 여기서 찍어 간다고 하는데, 비명같은 감탄을 질러야만 될 성싶은 감동이 다가섰다. Panorama사진기를 가지고도 서너번 나누어야 찍힐 정도로 눈앞에 270도로 펼쳐지는 광경은 내 가슴속에 싱그런 공기와 함께 담아두기로 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지만 그 감동을 다른이에게 알려줄 만큼의 선명도나 생동감을 표현할 수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LE FIGGARO를 향해서 그리니치 빌리지로 가다. 사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마지막 입새"를 썼다고 하는 LE FIGGARO를 가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나. 사전학습은 이렇게 언제고 발휘되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그때 그 시인의 영감을 상상하면서 그가 즐겼다는 카프치노를 한잔했다. $4.5 규모도 자그마했지만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듯 했다. 그 주변의 Washington Park에 가보았다. 뉴욕대학에 인접한 이 광장은 내가 뉴욕에 와서 식사를 하고 처음도착했던 그곳. 낮에는 하겐다스아이스크림을 $4주고 사먹었던 그 곳인데. 마약을 하는 이들의 웅성거림과 그 특유의 향이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광장둘레을 계속해서 뛰는 젊은 백인여자와 술취한 흑인의 고함소리등 도무지 앉아서 그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길가 지하에 있는 Video 샵에 들어섰다. 1920년대부터의 영화가 Video에 담겨 즐비하게 진열되었는데, 빌려주는 일도 있는 듯했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서 선택의 장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길고 나와서 밤길을 헤매다가 저릴 Show Room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Show Girl을 만났다. $5짜리의 Phone Show도 보았다. 결국 경험으로 체득해야겠다는 결과은 고급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저급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제 되었다. 길거리를 또다시 헤매다가는 DeliShop에 들러서 Ice Tea를 마셨는데, Snapple이라는... 그 맛이 그럴싸 했는데 한국에서는 마셔보질 못했다. 그런데 그 양이 우리가 보통 마시는 음료수의 양보다는 두배이상이 되는 듯 싶었다. 그 DeliShop에서는 다른 곳에서와 같이 얼음에 재운 수박과 과일을 잘라서 섞어 넣은 것들이 깨끗하게 포장해서 팔고 있었는데, 물건의 청결정도나 진열장으로 보아서 많이들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Snapple을 즐기면서 숙소를 향했다. 마시고 또 마셔도 다 마시질 못하는 거대한 량?... 뉴저지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1시30분. Hotel에서는 유료영화를 상영한다. Super Vision이라는 회사의 위탁방송인 듯. 선택만하면 하루저녁에 $8.95씩 내야 한다. 피곤과 감동 그리고 생경함 그 밤은 또 이렇게 뉴욕의 숨소리를 들으며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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