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의 권위가 흔들리면 지적인 계층이 먼저 반응한다.
전통적인 또는 기성의 권위가 낡고 부패하여 흔들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지적인 계층이다. 그들의 섬세한 감각은 일반 민중들이 아직 그 흔들림을 느끼기도 전에 벌써 붕괴의 예감에 떨며 괴로워한다. 이때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의 권위를 옹호하려는 쪽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의지해 온 권위가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그 회복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동양에서 각 왕조의 교체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충신 열사가 그들이며, 서양의 개혁기에도 또한 어김없이 나타나는 극단한 반동주의자가 그들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의 권위로부터 탈주하는 쪽이다. 그들 중에 야심과 능력을 겸비한 자는 스스로 새로운 권위가 되어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나름대로 선택한 새로운 권위를 위해 낡은 권위를 타도하는 데 앞장선다. 그들을 지배하는 열정의 근원은 자기들의 권위가 새로움이며 그 선택이 모험이라는 점으로서 좋은 뜻으로는 혁명가이고 나쁜 뜻으로는 반역자라 불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은 것은 그들 탈주한 지식계급 또는 대항정영(= 대항 엘리트)의 유형이다.
혁명을 향한 열정과 재능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대략 네 가지가 되는데,
그 첫 번째는 열정도 재능도 없이 혁명에 참가한 자들이다. 이들은 머릿수를 채우는 데는 혁명에 도움을 주지만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는 점에서는 없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사소한 이해나 은원관계로 혁명에 가담하거나 반체제의 선전에 충동되어 모인 일시적인 다중의 대부분이 이들이다.
두 번째는 혁명운동에 필요한 재능, 즉 음모와 조직과 선동의 능력은 있으나 열정과 그에 따르는 신념이 없는 부류이다. 이들은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놀랄 만한 일을 한다. 그러나 기성의 권위가 뜻밖으로 완강하게 버티거나 거세게 반격해 오면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대항 집단에 입히게 된다. 거사 직전의 밀고, 결정적인 시기의 변절 따위가 이들의 솜씨이며, 때로 이들에게 있어서 반항은 혁명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조건으로 기성의 권위 체제에 수용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지기까지 한다.
세 번째는 앞서와 반대로 혁명에 필요한 재능은 없고 열정만 있는 부류이다. 이들은 모든 혁명운동에 있어서 힘의 원천이며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또한 가장 많이 희망하면서도 가장 적게 얻는 것이 이들이다. 어떤 혁명에서도 그 과일은 이들의 것이 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들에게 돌아가는 유일한 과일인 공허한 말의 성찬조차도 누구에겐가 가로채이고 만다.
마지막이 열정과 재능을 한 몸에 모두 지닌 경우이다. 이들이야말로 모든 대항 집단의 핵심 세력이 되며 미래의 새로운 권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이들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권위의 틀인 제도를 위주로 한 혁명으로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뒤엎는 극단한 양상을 보이는 한편,
다른 하나는 권위의 담당자를 위주로 하는 경우로 담당의 정당성만 확보되면 그 전의 제도를 계승, 답습하는 부분적인 혁명이 되고 만다.
이러한 구분은 물론 엄격한 서구식의 혁명 개념에는 맞지 않을는지 모른다. 뒤의 경우, 즉 동양형의 혁명은 결국 자기가 쓰러뜨린 왕조와 비슷한 새 왕조를 여는 것으로 끝나 버리고, 그나마도 어리석은 후계자와 그를 둘러싼 권력 장치의 무능 및 부패로 세월이 갈수록 혁명이란 말에는 어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이 몸을 일으킬 때보다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또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 꿈을 실현한 점에 있어서는 그들 역시도 혁명가들이다. 혁명이란 말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는 민중을 끌어대 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동양의 어떤 태조가 민중의 지지 없이 새 왕조를 열 수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런 동양적인 혁명가들 가운데 한층 억울한 것은 찬탈자란 이름을 가진 자이다. 그들은 살아서는 끊임없이 충의를 앞세운 반동 세력의 도전을 받고, 죽어서는 아름답지 못한 이름에 시달린다.
그들이 우리의 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양위를 받는 순간까지도 충성을 다짐하고 마지막 정적을 없앨 때까지도 자기가 말살시키려는 그 권위에 의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찬탈자로 태어나는 자가 따로 있지 않을 바에야 어느 시기까지의 충성은 진정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끝내 그 낡은 권위에 절망한 나머지 찬탈자의 길을 갔다면 반드시 그만을 나무랄 수도 없으리라. 또 자기가 말살할 권위를 끝까지 이용한 것도 그렇다. 그만큼 전통적인 권위가 갖는 상징적인 힘을 잘 알았다는 뜻에서 역시 비범이라고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 이문열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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